책머리에
병자호란 때 조선은 왜 전투다운 전투도 거의 없이 허무하게 패했을까?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마음에서 솟구치는 의문 가운데 하나이다. 나도 학창 시절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신만 제대로 차리고 웅전했다면 항복까지는 피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라는 안타까움이 뒤섞인 마음이었다. 하지만 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하고 머지않아 생각이 변했다. 당시 양국의 군사력은 비교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워낙 차이가 컸다는 사실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질문도 자연스레 달라졌다. 어차피 상대가 안 되는 걸알면서, 그래서 질 줄 뻔히 알면서도 왜 굳이 전쟁을 불사하여 치욕을 당했을까? 당연한 의문이었다. 물론 이에 대한 설명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를테면, 척화라는 헛된 명분론에 빠져서 끝내 나라를 망쳤다는 진단이다. 시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척화론을 헛된 명분론으로 치부하여 부정적으로 보았으니, 당연히 주화론이야말로 현실을 직시한 현명한 선택이라는 양단 구도 같은 설명이 마치 정설처럼 회자하였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런 설명이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일국을 다스리는 최고 위정자들이 바보일 리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대체로 영리하고 상황 파악도 빠르며, 과단성이나 지도력도 남다른 편이다. 권력을 쥔 자들이야말로 이해관계에 따른 계산이 매우 빠른 법이다. ‘현실‘에서 권력을 쥔 자는 본능적으로 ‘현실적‘이기 마련이다. 척화·주화 논쟁 구도에서 대개 인조와 그 측근, 곧 최고위 공신 세력이 주화를 주장한 것도 그런 이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간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일어나 척화를 외친 자들도 모두 조선의 최상위를 점한 최고 엘리트 기득권층이었다. 고위 공신 중에도 척화를 부르짖은 이가 적지 않았다. 당시의 논쟁을 공신 대 비非공신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하여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따라서 역사가라면 척화론을 표피적으로만 이해할 게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지키려고) 승산도 없는 전쟁을 선택했는지 그진짜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P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