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전투가 벌어질 가망은 없는 것 같았다. 포세로산을 떠날 때 나는 카트리지 개수를 미리 세어두었다. 그런데 거의 3주가 지난 뒤에 다시 헤아려보니, 내가 적을 향해 쏜총알이 세 발밖에 되지 않았다. 사람 한 명을 죽이려면 1천개의 총알이 필요하다는데, 이런 속도라면 내가 파시스트한 명을 처음으로 죽이는 데 20년이 걸릴 것 같았다. 트라조산에서는 전선이 더 가까워서 총도 자주 쏘았지만, 내가아직 누구도 맞히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그 시기에 그 전선에서 진짜 무기는 라이플이 아니라 메가폰이었다. 적을 죽일 수 없으므로, 우리는 대신 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것이 워낙 비범한 전쟁 방식이라서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적과 우리가 서로 고함을 지르면 들릴 만한 거리에 있을 때에는 항상 양측 참호에서 엄청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 참호에서는 "Facistas-maricones!" 파시스트 참호에서는 "Viva España! Viva Franco!" 상대편에 영국인이 있다는 것을 아는 파시스트들은 이렇게 외쳤다. "영국인은 집으로 가라! 외국인이 웬 말이냐!" 정부 측의 당소속 의용군에서는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선전 문구를 외치던 것이 아예 일반적인 기법으로 발전했다. 기회가오면 보통 기관총사수들에게 총 대신 메가폰이 지급되었다. 그들은 대개 정해진 말을 외쳤다. 파시스트 병사들에게 너희들이 국제 자본주의의 용병에 불과하며, 지금 같은 계급의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고 설명하는 혁명의 감성이 가득한 말이었다. 그들은 또한 적에게 우리 편으로넘어오라고 촉구했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이런 말을 계속 반복했다. 어떤 때는 거의 밤새도록 계속되기도 했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음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파시스트 진영에서 탈영병이 찔끔찔끔 발생한 데에 이 방법이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 모두가 동의했다. - P76
하지만 물에 흠뻑 젖은 땅에서는 소리 없이 이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무슨 짓을 해도 발이 진흙탕에 빠져움직이지 않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철벅철벅 소리가났다. 바람이 잦아든 것이 문제였다. 비가 내리는데도 사방이 아주 조용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질 것이다. 한순간 내가 깡통을 발로 차는 바람에 오싹해졌다. 몇 마일 이내의 모든 파시스트 부대원이 틀림없이그 소리를 들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파시스트 진영에서는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소리에 반응해서 총을 쏘지도 않고,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는 계속 나아갔다. 계속 속도가 느려졌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다는 내욕망이 얼마나 깊었는지 지금 설명할 길이 없다. 적이 우리 소리를 듣기 전에 수류탄을 던질 수 있는 거리 안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런 순간에는 겁도 나지 않는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빨리 가고 싶다는, 거대하고 절망적인갈망을 느낄 뿐이다. 나는 야생동물의 뒤를 밟을 때에도 정확히 똑같은 경험을 했다. 빨리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고싶다는 고통스러운 갈망,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몽롱한 확신. 게다가 그 거리가 계속 늘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지역을 잘 알았다. 거리는 고작해야 150야드였다. 그런데도 마치 1마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린 속도로 기듯이 이동하다 보면, 다양한 지형을 개미가 얼마나거대하게 느낄지 알 수 있다. 여기는 매끄러운 풀밭, 저기는 고약한 진흙밭, 높이 솟아서 서로 스치는 소리를 내는갈대밭은 반드시 피해야 하고, 돌더미는 희망을 포기하고싶게 만든다. 소리 없이 그 돌더미를 넘어가기가 불가능할것 같아서.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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