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만 있으면 5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순록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건 떳떳한 사냥이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1킬로미터 떨어진곳에서도 총과 테크놀로지를 사용하기도 해요. 그건 사냥이 아니에요. 비디오 게임이죠. 사냥꾼이 그렇게 멀리 있으면 설사 동물들이 발견한다 해도 아마 위협으로 여기지 않을 거예요." 한편, 기술을 너무 적게 사용하는 것 또한 문제라고 도니는 덧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직접 만든 긴 활과 손수 깎은 돌촉을 달아서 사냥합니다. 굉장한 물건이죠. 하지만 이런 무기는 비효율적입니다. 깔끔한 즉사를 유도하기 어렵고 동물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끝나기 쉽죠.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다룰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무엇인가? 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동물과 공정한 조건에서 맞설 수 있을까? 제 관심사는 이런 것들이에요." 도니에게 그 해답은, 축구장 몇 개 붙인 거리에서 쏘는 것과, 나뭇가지에 돌촉을 달아서 쏘는 것, 그 중간쯤에 있다. - P280
‘산길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500미터 앞에는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이 절벽이 바로 ‘죽음‘이며, 우리는 모두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절벽에서 떨어질 운명입니다. 붓다도 죽었고, 예수도 죽었습니다. 당신도 죽고, 나도 죽을 것입니다." 켄포는 바닥에 놓인 작은 매트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저 침대에서 죽고 싶습니다." 그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저 앞에 절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습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인생의 경로를 바꿀 수 있다. 더 아름다운 길을 선택할 수 있고, 길이 끝나기 전에 길의 아름다움을감상할 수 있으며,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절벽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입니다. 정신적 경로가 바뀌고, 저절로 더 자비로워지고 마음을 더 잘 챙기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절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죠. 심지어 장례식이 끝난 후에도 죽음을 잊고, 그냥 케이크를 먹으며 기분 전환을 하려 합니다. 반면 부탄 사람들은 절벽을 알고 싶어 하고, 기꺼이 죽음을 이야기하며 그 과정에서 케이크 먹을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개의치 않습니다." - P313
순록의 목에서는 피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피는 무성한 갈기를 따라 얇은 붉은 줄을 그리며 흘러내렸다. 차가운 북극 바람에 갈기가 흔들렸다. 그 작은 흔적이 아니었다면, 나는 순록이 단순히 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순록의 두툼한 몸체가 자신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뒷다리에 난 커다란 상처. 북극의 자연 속에서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방랑하며 닳고 닳은 발굽, 수많은 날들 동안 푸른 식물들을 새김질해온 이빨. 자신을 막아선 것들에 맞서 찌르고 받고 쳐내고 휘둘러가며 앞길을 개척해온 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렀을까. 털은 두껍고 빽빽하다. 그동안 어떤 폭풍들을 견뎌왔을까. 나는 순록 곁에 앉아 손을 그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툰드라를 바라봤다. 눈앞에서부터 낮아지던 땅이 오르막을 이루며 ‘더 포트‘를 향해 솟구치다가 다시 100킬로미터가량을 내려가면서 드넓은 협곡과 송림 분지를 지나 축치해로 이어진다. 놈이 속해 있던 무리는 아까 내려왔던 언덕에서 다시 풀을 뜯고 있었다. 슬픔과 성취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몸은 무겁지만 동시에 강렬한 에너지가 요동쳤다. 이 짐승에 대해, 그리고 그가 살아온 땅에대해 강렬한 친밀감과 감사함이 느껴진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할 수 있을까. - P325
Posewitz생물학자이자 윤리학자이자 사냥꾼인 짐 포세비츠 Jim F는 《정당한 추적을 넘어서: 사냥의 윤리와 전통 Beyond Fair Chase: TheEthic and Tradition of Hunting》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냥은 우리가 여전히 이 땅에 속하고자 하는 열망, 자연 세계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열망, 생태적 드라마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야생의 불씨를 되살리고자 하는열망을 실현하는 최후의 수단 중 하나이다." 이런 심정에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에선 무겁고 부담스러운 감정이 올라온다. 지금 나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다. 나는 참여자다. 사냥을 통해 몸, 마음, 영혼을 온전히 자연과 연결하고자 하는 이런 열망들이 지난 10년간 오지 사냥이 증가해온 이유일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야생 보존을 위해 싸우는 단체인 ‘오지 사냥꾼과 남시꾼 Background Hunters and Anglers‘의 대표 랜드 토니 Land Tawney가 했던 말이다. 2014년에 1,000명이었던 이 모임의 회원은 2020년에40,000명으로 급증했다. 나는 북극으로 떠나오기 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토니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내가 먹을 고기를 내가 직접 잡는다는 개념, 나의 음식을 위해 분투하는 것, 그 음식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아는 것. 사냥은 분명히 이런 것을 가르쳐줄 것이고, 모든 고기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도록 만들어줄 겁니다." - P326
"괜찮죠?" 나는 확실히 그렇다고는 말 못하겠다고 했다. "순간순간이 마음을 무겁게 하죠. 만일 이런 느낌이 사라지는때가 온다면 나는 사냥을 그만둘 겁니다." 소로는 사냥과 그에 따라오는 감정들을 인간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보았다. 《월든》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들판과 숲에서 인생을 보내는 이들, 어떻게 보면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는 낚시꾼, 사냥꾼, 벌목꾼 같은 사람들은, 하던 일을 잠깐씩 멈추고 자연을 관찰한다. 이때 철학자나 시인보다 더 유리한 기분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철학자나 시인은 자연을 대할 때 기대를 품고 다가가기때문이다." 하지만 소로도 사냥에 커다란 책임감이 따른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같은 책에서 그는 사냥이 반드시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적었다. "진지하게"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작가 에드워드 애비 Edward Abbey는 훗날 "진지하게"를 "존중, 경외, 감사의 정신으로 행하는"이라는 의미로 풀었다. - P330
철학자들은 이 결함 있는 상식을 "자연에 대한 이상화appeal to nature"오류라고 부른다. "자연적인 것은 무조건 좋고 조화롭고 도덕적으로 옳다고 가정하는 모든 믿음, 주장, 수사적 전략 따위가 모두 여기에 들어간다. 이 개념을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표현했다. "폭력에 의한 죽음, 추위로 인한 죽음, 굶주림으로 인한 죽음, 이것이 숲속을 우아하게 거니는 아름다운 야생동물들의 ‘일반적인 ‘최후‘다. 자연이 평화로운 곳이라며 떠들어대는 감상주의자들은 자연이 얼마나 무자비한 곳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하위생명체들에게 삶은 험난하고 혹독한 것이며,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삶은 저 감상주의자들이 ‘자연 상태‘라 부르는 조건 속에서 영위된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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