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1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돌다 보면 너무 함께이고 또 너무 혼자여서 생각과 내면의 신화조차 이따금 한데로 모인다. 가끔은 똑같은 꿈도 꾼다. 프랙털들과 파란 구체들과 어둠이 집어삼킨 낯익은 얼굴들의 꿈, 감각을 강타하는 밝고 활기찬 검은 우주의 꿈. 날것의 우주는 야생이자 원시의 검은 표범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선실을 활보하는 꿈을 꾼다. - P7

치에는 운동을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실험실창밖을 내다본다. 무중력 상태의 단발이 가만히 일자로선다. 남은 평생 궤도에만 머무를 수 있다면 모든 건 무사할 것이다. 엄마는 치에가 지구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니다. 이건 마치 의자 뺏기 놀이와 같다. 모두가 앉을 의자는 부족하지만, 노래가 나오는 한 의자개수는 중요하지 않고 모두가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멈춰서는 안 돼. 계속 움직여야 해. 이 대단한 궤도를 돌고 있는 한 당신은 무사하며 무엇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지구가 우주를 질주하고, 시간에 취한 당신이 빛과 어둠을 뚫고 전속력으로 그 행성을 뒤쫓는 한, 끝은 없다. 끝은 있을 수 없다. 오직 돌고 돌 뿐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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