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돈들이 자신의 운명을 이해했다면 사람들이 새벽에 돈사에 들어섰을 때 비슷한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팀장은 돈방을 둘러보며 지나치게 야위었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돼지가 있으면 바로 도태시켰다. 이런 돼지들은 크기가 20~30cm 정도였는데 옅은 분홍빛 피부 아래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살이 없었다. 다리에 이상이 있는 경우 크기나살찐 정도에 상관없이 즉시 도태시켰다.
자돈을 죽이는 방법은 도태라는 표현이 거창하게 느껴질 만큼 단순했다. 다리를 잡아서 들어 올려 바닥에 패대기치면 끝이었다. 그리고는 발로 툭 쳐서 배수로에 빠뜨렸는데 이렇게 한다고 돼지가 죽지는않는다. 아무리 작고 연약한 돼지라고 해도 일격에 죽지 않았다. 입과 코로 피를 쏟아내고 발버둥을 치면서도, 돼지의 숨이 끊어지는 건 분뇨장에 버려지고 추위와 허기 속에서 몇 시간을 보낸 다음이었다.
팀장은 내가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다. 그녀는 작업 중에도 틈만 나면 자식들 얘기를 들려주고 내가 안쓰럽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반찬이나 국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숙소에서 작은 몰티즈 한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런 팀장이 (비쩍 마른 몰티즈보다 100배는 더 귀여워 보이는) 자돈을 아무런 동요 없이 죽이는 걸 보면 일이란 것이 사람을 얼마나 무뎌지게 만드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 P187

쌍남의 표정이 생각난다. 나나 다른 한국인과 말할 때 매번 떠올랐던 얼굴. 코를 향해 얼굴 근육 전체가 몰려든 모습이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체적인 표현의 중간 단계에 있는 얼굴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삽질을 하면 손에 굳은살이 배기듯이 말과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오래 일한 사람의 얼굴에는 그런 엉거주춤한 표정이 남는 듯싶었다. 우리는 한국어가 너무나도 익숙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첫마디만 들어도 대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덕분에 그에 걸맞은 표정이란 게 출발 신호를 들은 육상 선수마냥 튀어나온다. 하지만 쌍남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상대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 자신이 이해한 몇 개의 단어를 가지고 전체의 의미를 추측해야 했을 것이다. 그다음 자신의 반응을 한국식 위계질서에 적당하게 다듬어야 했을 것이다. 잠깐 찡그리기 위해서든 웃어 보이기 위해서든 그는 매번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듯한 그 표정은 내가 만난 이주노동자들의 얼굴 속에 빠짐없이 박혀 있었다. - P195

작업을 끝낸 후엔 소리로 만든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한쪽에선 멀쩡한 장기를 뜯어내고 있는데 당신은 겨우 귀가 아팠다는 것밖에는 할 말이 없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것 같다. 만약 돼지가 가시에 찔렸다거나 계단에서 굴렀다면 이런저런식으로 얼마나 아팠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취도 하지 않고 외과 수술을 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럴 수만 있다면 평생 모른 채로 살고 싶다.)
"마취 안하고 그냥 잘라내요?"
"이 많은 걸 언제 마취하고 있어? 그냥 하는거지. 괜찮아."
야전병원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우리는 다정하게 잡담을 나눴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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