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가 3, 4센티미터나 되는 책을 양손으로 잡고 집중해야 하는 독서는 다른 어떤 행위보다 등뼈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 일이다. 나는 종이책을 증오한다.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독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다닐 수 있어야 한다‘
라는 다섯 가지의 건강성을 요구하는 독서 문화의 마치스모를 증오한다. 그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른바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 구부러진 목으로 겨우겨우 지탱하는 무거운 머리가 두통으로 삐거덕거리고, 내장을 짓누르며 휘어진 허리가 앞으로 기운 자세탓에 지구와의 줄다리기에 자꾸만 지고 만다. 종이책을 읽을 때마다 내 등뼈는 부쩍 더 휘어지는 것만 같다. - P37
박물관이든 도서관이든 보존되는 역사적 건조물이 나는 싫다. 완성된 모습으로 그곳에 계속 존재하는 오래된 것이 싫다. 파괴되지 않고 남아서 낡아가는 데 가치가 있는 것들이 싫은 것이다. 살아갈수록 내 몸은 비뚤어지고 파괴되어간다. 죽음을 향해 파괴되어 가는 게 아니다.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 그런 점이 비장애인이 걸리는 위중한 불치병과는 결정적으로 다르고, 다소의 시간 차가 있을 뿐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파괴되어 가는 비장애인의 노화와도 다르다.
책을 읽을 때마다 등뼈는 구부러져 폐를 짓누르고, 목에는 구멍이 뚫렸고, 걸어다니면 여기저기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내 몸은 살아가기 위해 파괴되어 왔다.
살아가기 위해 싹트는 생명을 죽이는 것과 과연 무슨차이가 있을까. -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