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현명하던 존 버거는 사진에 관한 중요한 에세이에서 "클로즈업은 통계의 대척점"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책이 통계 대신 여러분에게 제공하려는 것도 클로즈업이다(사진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찍은 사진은 기껏해야 용건만 말하고 끊은 전화 수준이다). 나는 클로즈업이 통계에 표정과 피부를 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로즈업은 통계가 허용하는 사람과 대상 사이의 거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클로즈업은 우리의 멱살을 그러쥐고 현장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퍼센티지로만 표현되던 일들이 (비록 순간일지라도) 우리 경험의 일부가 된다.
나는 이해하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거나 통계 수치 따위는 지적인 밑장 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는 당연히 정확한 숫자가 필요하다. 나는 다만 통계와 클로즈업이 (그리고 그렇게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활동이) 건축으로치면 설계와 감리 같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일련의 숫자에 사회의 현실을 대변하는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 숫자들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말하자면 ‘냄새를 맡아볼 의무‘가 있다. - P9
케이지가 워낙 좁았던 탓에 네 개의 머리를 가진 닭이 자신의 몸을 쪼아대는 것처럼 보였다. 철창이 가두고 있는 것은 닭이 아니라 가장 유해한 종류의 광기인 듯싶었다. 물론 철창 안에 있는 동물이 미친 건지 아니면 그들을 철창 속에 가둔 동물이 미친 건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닭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고통을 당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이 상황을 이해했다면 동족을 공격하는 대신 내 팔을 물어뜯으려고 했을 것이다.
동정심도 그저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닭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이것들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밟은 다음 저 산 너머로 차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만약 내가 이 닭들에 대해서 책으로 읽었다면,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다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내 눈앞에 있었고 너무나도 역겨워 보였기 때문에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가 없었다. 케이지란 도구는 갇힌 쪽이나 가둔 쪽 모두에게서 최악의 자질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