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세 척이 잔잔하게 굽이치는 그 바다에 정지한 채 영원히 푸른 바다 속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바다 속에서는 신음소리나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고 잔물결이나 물거품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데, 그렇게 조용하고 평온한 바다속에서 바다의 괴물이 단말마의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육지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수직으로 내려간 밧줄은 뱃머리에서는 한 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 가느다란 세 개의 밧줄에 큰 고래가 8일에 한 번씩 태엽을 감아주는 대형 시계의 커다란 추처럼 매달려 있다. 매달려있다고? 무엇에? 겨우 석 장의 널빤지에. 이것이 한때 "네가 창으로 그 가죽을 꿰뚫을 수 있으며,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 ・・・・・・칼로 찔러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화살이나 작살도 맥을 쓰지 못하는구나. 쇠도 지푸라기처럼 여기고, 놋은 썩은 나무 정도로 여기니, 그것을 쏘아서 도망치게 할 화살도 없고, 팔맷돌도 아예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 몽둥이는 검불같이 보고, 창을 휘둘러도 코웃음만 치는구나!"라고 자랑스럽게 묘사된바로 그 생물인가? 이것이 그 짐승인가? 오오, 예언자들의 말은 으레 실현되지 않는 법이다. 꼬리에 천 사람의 힘을 지닌 거대한 바다짐승은 ‘피쿼드‘ 호의 창을 피해 몸을 숨기려고 산더미 같은 바다 속에 머리를 처박고 말았기 때문이다. - P436
그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손바닥 너비만큼도 당길 수 없었던 밧줄이 이제는 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빠르게 보트 안으로 말려 올라오더니, 곧이어 고래가 그들로부터 두 보트 길이만큼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래의 동작은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육상동물은 많은 혈관에 판막이나 수문 같은 것이 있어서, 상처를 입으면 적어도 당장은 피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차단된다. 하지만 고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혈관에 판막이 없는 것이 고래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작살처럼 작고 뾰족한 것에 찔려도 모든 동맥계에 걸쳐 치명적인 출혈이 시작되고, 깊은 바다 속에서 강한 수압을 받게 되면 출혈이 더욱 심해진다. 고래의 생명은 끊임없이 흘러 나가는 피와 함께 쏟아져 나간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고래 몸속에 있는 피의 양이 워낙 많고 몸속의 샘 또한 깊은 곳에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출혈이 계속되는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분간하기도 어려운 산 속의 샘에서 발원한 강물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도 보트들이 이 고래에게 다가가 내흔드는 꼬리의 위험을 무릅쓰고 창을 꽂았고, 그러자 새로 생긴 상처에서는 피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한편 머리에 있는 본래의 분수공은 빠르긴 하지만 이따금씩 겁에 질린 물줄기를 하늘로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이 구멍에서 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직 급소를 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래잡이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의 생명에는 아직 손이 닿지 않은 것이다. - P437
고래는 여전히 자신의 핏물 속에서 뒹굴다가 마침내 옆구리 아래쪽에 달려 있는 통만 한 크기의 괴상하게 변색된 혹이랄까. 하나의 돌출한 살덩어리를 얼핏 드러냈다. "절호의 표적이군." 플래스크가 외쳤다. "저길 한번 찔러봐야지" "그만둬!" 스타벅이 외쳤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어!" 인정 많은 스타벅이 말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창을 던진 순간, 그 잔인한 상처에서는 궤양성 고름이 뿜어 나왔고, 고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못이겨 걸쭉한 피를 내뿜으면서 보트를 향해 마구잡이로 돌진해 왔다. 그리고 보트와 우쭐한 선원들에게 핏덩어리를 소나기처럼 퍼붓고 플래스크의 보트를 뒤집고 뱃머리를 부수었다. 이것은 죽기 직전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출혈 때문에 이미 힘이 빠져 있었던 고래는 자기가 부순 보트에서 떨어져 나가 힘없이 옆구리를 드러낸 채 헐떡거리고 그루터기처럼 잘린지느러미를 기운 없이 퍼덕이다가, 종말이 가까워진 지구처럼 천천히 몇번 회전하더니, 그 비밀스러운 하얀 배를 드러내고는 통나무처럼 드러누워서 숨을 거두었다. 가장 애처로운 것은 죽기 직전의 마지막 물 뿜기였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큰 샘의 물은 차츰 빠져나가고, 반쯤 질식한 목구멍에서 나는 꼬르륵거리는 우울한 소리와 함께 물기둥은 점점 낮아졌다. 그것이 죽어가는 고래가 마지막으로 길게 내뿜은 물줄기였다. -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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