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여라! 바싹 붙여!" 그가 뱃머리 노잡이에게 소리쳤다. 기운이 빠지고있는 고래는 분노도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다가가라! 바싹 붙여라! 보트는 고래 옆에 나란히 섰다. 스티브는 뱃머리에서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 길고 날카로운 창을 고래에게 천천히 박아 넣었다. 그리고 창을 그대로 둔 채조심스럽게 연신 휘저었다. 마치 고래가 삼켰을지도 모르는 금시계를 창출으로 더듬어 찾아서 시계를 망가뜨리지 않고 갈고리에 걸어서 꺼내려고 신중하게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찾고 있는 금시계란 다름 아닌 고래의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목숨이었다. 이제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괴물이 실신상태에서 깨어나 뭐라 말할 수 없는 단말마의 고통을 느낀 듯, 자기가 뿜어낸 피 속에서 무시무시하게 허우적거리며 뒹굴었다. 도저히 헤어날 수없는 물보라, 미친 듯이 들끓는 물거품에 휩싸인 채 마구 몸부림쳤다. 그래서 위험을 느낀 보트는 당장 뒤로 물러섰지만, 그 광란의 어스름 속에서 대낮의 맑은 공기 속으로 나오기 위해 한참 동안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제 고통이 누그러진 고래는 다시 몸을 뒤틀면서 우리 시야로 들어왔다. 고래는 파도가 일렁이듯 좌우로 몸을 흔들고, 경련하듯 분수공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격렬하고 고통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붉은 포도주의 자줏빛 찌꺼기처럼 빨갛게 엉킨 핏덩어리가 깜짝 놀란 공기 속으로 연거푸 솟구쳐 오른 다음 다시 아래로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고래의 몸뚱이를 타고 바다로 흘러내렸다. 고래는 심장이 터진 것이다!
"죽었어요! 스티브" 다구가 말했다.
"그래. 파이프도 둘 다 불이 꺼졌어." 대답하면서 스티브는 자기 입에서 파이프를 떼어 담뱃재를 수면에 털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해치운 거대한 시체를 생각에 잠긴 눈으로 바라보며 잠깐 서 있었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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