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는 돈을 낸 부대원보다 더 많은 인물을 그려 넣었는데요 배경으로 물러선 이들 덕분에 빛을 받은 전면의 부대원에게 더욱 시선이 쏠립니다.

저는 구석의 작은 소녀가 눈에 들어와요.

좀 뜬금없죠? 바쁘게 움직이는 군인들 사이로아이가 뛰어다니니까요. 소녀가 입은 드레스의 황금빛과 푸른빛은 민병대를 상징합니다. 허리춤에 매달린 흰 닭은 민병대가 소지한 화승총을 상징하고요. 당시 대원들의 소지품에 닭의 발톱 문양을 새겼다고 합니다. 소녀는 실제 인물이라기보다 민병대를 의인화한 상징적 인물인 셈이죠.

민병대라면 직업군인이 아닌데 비싼 그림을 주문한 이유가 있나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민병대는 단순한 시민군이 아니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독립 후에는 도시의 치안을 담당했어요. 민병대 대장은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고,
무기나 갑옷을 스스로 갖춰야 했던 대원들도 부유층이었습니다. 민병대라는 자부심을 화폭에 담고 싶지 않았을까요? - P438

유화 물감을 두텁게 발라 질감을 살리는 기법을 임파스토impasto라고 합니다. 17세기의 할스가 빠른 붓놀림을 보유했다면, 렘브란트는 붓뿐만 아니라 팔레트나이프로 물감을 거칠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두 세기 후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만의 개성적 필치로 이 기법을 발전시킵니다. - P456

두 그림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나리자는 정삼각형 구도로 안정적인 반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순간의 느낌을 강조합니다. 각 잡고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아니라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서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찰나를 그린 거죠.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미술은 진리의 영속성을 추구하고, 바로크 미술은 진리의 순간성에 주목한다고 합니다. 두 그림 속에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대조적 세계관이 잘 배어있다고 할까요. - P468

펠리페 2세의 통치 철학은 ‘가톨릭 군주‘였습니다.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대제국을 가톨릭 신앙으로 묶고자 했죠. 그래서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같이 조용한 종교 공간에서 일하기 좋아했습니다. 마드리드를 비롯한 스페인 곳곳에 궁전을 보유했는데도 말이죠.

왕이 수도원을 좋아하다니 중세로 돌아간 것 같아요.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펠리페 2세는 아버지 카를로스 1세로부터 막대한 영토와 강력한 군대를 물려받아 전 유럽에 스페인의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종교적 관용을 포기하며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죠. 그 바람에 국력을 낭비해 스페인의 몰락을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모로 엇갈린 평가를 받는 왕이군요.

펠리페 2세는 아메리카 잉카제국을 정복하고 포르투갈과 합병하는 등 큰업적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랑하던 무적함대가 1588년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에 패배하면서 바다에서의 패권을 잃게 됩니다. 신교도를 탄압하여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부추긴 것도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1568년부터 1648년까지 80년간 벌어진 네덜란드와의 기나긴 전쟁으로 스페인은 전쟁의 늪에 빠집니다. 신대륙에서 들여온 막대한 은으로 전쟁 비용을 감당했지만, 비효율적인 관료 시스템마저 겹치며 나라가 파산하고 맙니다. 스페인은 펠리페 2세가 재위하는 동안 네 차례나 국가 파산을 선언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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