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크는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었다. 요한계시록, 토론토에서 같이 살던 남자친구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항상 침대 옆에 성경책을 놓아두었다. 타일러가 읽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나이도 어린데 참 잘 읽는구나." 클라크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소년은 분명히 약간 이상했지만, 누가 그 아이를위해 뭘 해줄 수 있었겠나? 2년째에는 모두가 아직 비틀거리고 있었다. "뭐하고 있었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을 읽어주고 있어요." 아이가 말했다. "저 안에는 아무도 없는데." 물론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걸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클라크는 햇빛 속에서도 한기를 느꼈다. 비행기 문을 여는 것은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한테서도 바이러스가 옮을 수 있는지 아무도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비행기는 그 어느 무덤 못지않게 좋은무덤이었기 때문에 에어그라디아 비행기는 계속 폐쇄된 상태로있었다. 클라크가 그 비행기에 이렇게 가까이 다가간 것도 처음이었다. 다행히도 비행기 창문들은 어두웠다. "난 그냥 저 사람들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 것도 다 이유가 있기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타일러, 이유 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들도 있어." 이렇게 가까이있으니 유령 비행기의 고요함이 그를 압도했다. "그럼 왜 우리는 안 죽고 저 사람들은 죽었어요?" 소년이 말했다. 잘 연습한 주장을 끈기 있게 다시 펼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년은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클라크를 쳐다보았다. "저들은 특정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고 우리는 노출되지 않았으니까. 물론 이유를 찾아볼 순 있을 거야. 여기 있는 몇 명은 이유를 찾으려다가 반쯤 미쳐버렸지만, 타일러, 그게 전부란다." "우리가 다른 이유로 구원을 받은 거라면요?" "구원을 받았다고?" 클라크는 자기가 타일러와 자주 이야기를나누지 않는 이유가 기억이 났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니?" "착한 사람들요." 타일러가 말했다. "나약하지 않은 사람들." "타일러, 이건 착하고 못됐고의 문제가 아니야. 저 에어그라디아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잘못된 시각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을뿐이란다." "네." 타일러가 말했다. 클라크가 돌아서는 것과 거의 동시에 뒤에서 타일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성경 구절을 읽었다.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 P351
그곳에 있는 별들은 하늘의 다른 어떤 곳에 있는 것들보다 흐릿했다. "일주일 전에 나타났어." 그가 말했다. "깜짝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어. 어떻게 저렇게 대규모로 했는지모르겠어." "누가 뭘 어떻게 했는데요?" "보여줄게. 제임스, 망원경 좀 빌릴까?" 제임스가 삼각대를 움직였다. 클라크가 망원경 렌즈를 하늘에 있는 암점 바로 밑에 맞춰서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다이얼을 조심히 돌려가며 초점을맞췄다. "당신이 오늘 밤에 피곤하다는 건 알지만, 이걸 보면 여기까지 올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거야." "대체 뭐가 있는데요?" 클라크가 뒤로 물러섰다. "망원경 초점을 맞춰놨어." 그가 말했다. "망원경을 움직이지 말고 들여다보기만 해." 커스틴은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보고 있는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서 말했다. "안 보이는데요." "거기 있어. 다시 봐봐." 저 멀리서 작은 빛의 점들이 모여 격자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몇킬로미터 떨어진 언덕의 한쪽 면에 빛의 점들이 보였다. 전기로 불을 밝힌 거리들이 있는 마을이었다. - P425
숨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일렁이는 물결 같은 하프 음악이 들리더니 아이들이 나타났다. 공연 시작 때 그의 딸들 역할을 했던 어린 여자아이들이 이젠 환영이 되어, 작은 유령들이 되어 등장했다. 그중 둘은 다음 주 화요일에, 하나는 아침에, 하나는 늦은 오후에독감으로 사망하게 될 것이다. 나머지 한 아이 커스틴이 몸을 홱돌려 기둥 뒤로 가서 숨었다. "허리 아래로는 켄타우로스야." 아서가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는 날카로운 통증을, 가슴을 쥐어짜는 듯하고 무거운 돌로 누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가까이 있는 합판 기둥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거리를 잘못 판단해서 나무에 손을 세게 부딪쳤다. 그는 손을 오므려 가슴에 댔는데, 예전에 똑같은 행동을 해본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델라노 섬에서 살던일곱 살 때, 그와 남동생은 해변에서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굴뚝새도 그 짓을 한다." 아서가 그 새를 떠올리며 말했지만, 자신의 귀에는 목이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에드거는그로 하여금 내가 또 대사를 망쳤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젠 너무 어지러웠다. "굴뚝새……." 객석 맨 앞줄에서 한 남자가 일어났다. 아서는 새를 안듯 손을 오므려서 가슴에 대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동시에 두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귓가에 해변의 파도 소리가 들렸다. 무대 조명이 예전에 혜성이 그랬던 것처럼 어둠 속에서 기다란 빛줄기를 그리고 있었다. 그가 10대였을때 친구 빅토리아의 집 밖의 흙길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히야쿠타케 혜성이 추운 하늘에 손전등처럼 걸려 있었다. 일곱 살때 해변에서 새를 발견했던 날에 대해 그가 기억하는 것은 그의 손바닥 안에서 그 새의 심장이 멈췄다는 사실이었다. 파닥거림이 불안정해지더니 완전히 멈춰버렸다. 앞줄에서 일어선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아서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기둥에 몸을 대고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 눈이 조명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며 내렸다. 그는 그 모습이 이제까지 본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 P447
클라크는 고개를 들어 비행장에서 진행되는 저녁 활동과 20년째 땅에 발이 묶여 있는 비행기들과 창유리에 비친 반짝이는 촛불을 바라본다. 그의 생전에 비행기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보게 될 거라는 기대는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배가 항해를 시작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다시 가로등을 밝힌 마을이 있다면, 악단과 신문이 있다면, 이 서서히 깨어나는 세계가 다른 것들도 갖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지금 배들이 출발해서 그를 향해 오고 있거나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도와 별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한 선원들이 키를 잡고 있을지도, 필요나 단순한 호기심에서 항해를 시작한 배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 다른 편에 있는 나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적어도 그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는 배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상을 향해 바다를 건너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흐뭇해한다. - P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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