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저멀리 공항 외벽 울타리 근처에 홀로 고요히 서 있는 에어그라디아 452편. 클라크는 그 비행기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가끔은 그 비행기가 저 밖에 서 있는 다른 비행기들과 마찬가지로 비어 있다고 자신을 믿게 만드는 데 가까스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공항을 치명적인 전염병에 노출시키기보다는 그 비행기를 계속 폐쇄하기로 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결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말자. 승객들이 맞이했을 마지막 몇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말자. - P337

그들은 서로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배웠다. 80일 정도가 되자 영어를 모른 채 이곳에 온 사람들 거의가 하나둘씩 짝을 지어 영어를 배우고 있었고, 영어 사용자들은 루프트한자, 싱가포르항공, 캐세이퍼시픽, 에어프랑스가 싣고 온 언어들 중 하나 이상을 공부하고 있었다. 클라크는 루프트한자 승무원이었던 아네트로부터 불어를 배웠다. 그는 하루하루 살아내기 위한 잡일을 하면서, 물을 끌어오고, 세면대에서 옷을 빨고, 사슴가죽을 벗기는 법을 배우고, 모닥불을 피우고, 청소를 하면서 배운 표현들을 입속말로 익혔다. 주 마펠 클락. 좌 비트 당 레호포트. 튀므 멍크, 튀므 멍크, 튀므멍크 내 이름은 클라크입니다. 나는 공항에 살아요. 나는 당신이그리워요. 나는 당신이 그리워요. 나는 당신이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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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일째 되는 날 밤, 강간 사건이 일어났다. 자정이 지난 후 여자의 비명 소리에 공항 사람 모두 깜짝 놀라 잠이 깼다. 그들은 강간범을 해가 뜰 때까지 묶어놨다가 총구를 들이대고 위협해서 숲으로 끌고 간 뒤, 돌아오면 쏴버리겠다고 말했다. "여기 혼자 있으면 죽을 거예요." 남자가 흐느끼며 말했다. 아무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지만, 달리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 P341

로버트가 여기 있다면, 오 하나님, 정말 그가 여기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로버트가 여기 있다면, 분명히 인공 유물들로 진열장선반을 가득 채우고 임시 박물관을 열었을 것이다. 클라크는 진열장 맨 위 선반에 쓸모없어진 아이폰을 올려놓았다. 또 뭐가 있을까? 맥스는 지난번에 로스앤젤레스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떠났지만, 그의 아멕스 카드는 아직도 중앙홀 B에 있는 멕시코 식당 카운터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옆에는 릴리 패터슨의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클라크는 이 유물들을 스카이마일즈 라운지로 가져와서 진열장 속에 나란히 놓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보여서 자신의 노트북을 가져다 놓았다. 이것이 문명 박물관의 시작이었다. 그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몇 시간 후에 돌아와보니 누군가가 아이폰을 하나 더 가져다놓았고, 굽이 10센티미터가 넘는 빨간색 뾰족구두 한 켤레와 스노글로브가 놓여 있었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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