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에 맞고 나서 다시는 걷지 못할 거라는 얘길 들으면서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문명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어. 문명이란 게 무엇인가, 내가 그 안에서 어떤 가치를 가진 존재인가 하는 것들 말이야 그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시는 교전 지역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 그 생각은 아직 그대로고." "아직 바깥에는 세상이 있어." 지반이 말했다. "이 아파트 밖에는말이야." "저 밖에는 생존이 있을 뿐이야, 형, 밖에 나가면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써야 할 거야." "널 놔두고 갈 순 없어." "내가 먼저 떠날 거야." 프랭크가 말했다. "많이 생각해봤어." "무슨 뜻이야?" 지반이 물었지만 프랭크가 한 말의 뜻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 P248
프랭크는 리비아에 가기 전 환상적으로 기능하던 두 다리로 의자 위에 서 있었다. 총알이 날아와 그의 척수를 끊어놓으려면 아직 25년은 더 남은 때지만, 시간은 그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고 또 걸어가고 있었다. 한 여자가 언젠가 총의 방아쇠를 당길 아이를 낳고, 발명가가 무기 혹은 그 무기의 전신을 스케치하고, 때가 무르익으면 독재자가 커다란 화재로 번지게 될 결정을 내리고 나서야, 프랭크는 로이터통신 소속으로 취재를 위해 해외로 나가게 될 것이다. 퍼즐의 조각들은 그렇게 차츰차츰 맞춰질 것이다. - P258
-- 탈진, 타 죽을 듯이 열이 올랐다가 갑자기 한기가 들어 오들오들떨었다. 정신이 혼미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 그녀는 수평선에 떠 있는 컨테이너 화물선들에 대해 생각했다. 거기 있는 선원들은 독감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배에 오르기엔 너무 늦었지만, 이 비틀거리는 세상에도 안전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 눈을 떴을 때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바다와 하늘에 강렬한 분홍색과 진한 오렌지색 빛줄기가 너울거렸다. 컨테이너 화물선들은 하늘과 마찬가지로 불타는 색의 바닷물 사이 수평선에 떠 있었다. 피 흘리는 것 같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스테이션 일레븐의 강렬한 일몰과 쪽빛 바다가 생각났다. 배의 불빛이 희미해지면서 아침이왔고, 바다가 불타올라 하늘이 되었다. - P306
탑승교를 건너와 중앙홀 B의 밝은 조명 속으로 들어온 클라크는 텔레비전 모니터 밑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뭘 보고 있든, 클라크는 차를 한 잔 마시지 않고는 그 뉴스를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테러 공격이 벌어진 것일까? 그는 매점에서 얼 그레이를 한 잔 사서 천천히 우유를 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채 홍차에 우유를 섞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클라크는 지금 이 순간을 미리 그리워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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