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왕은 푸른 조명이 만들어낸 동그라미 안에 홀로 서 있었다. 겨울밤 토론토의 엘긴 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는 <리어왕> 4막, 왕이 실성하는 장면이다. 조금 전, 관객들이 입장하는 동안 무대 위에서 손뼉을 치며 놀던 어린 공주 역 여자아이 세 명은 지금 환영으로 돌아와 있었다. 왕이 손을 뻗으며 비틀비틀 다가가자 소녀들은 그늘 속에서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리어 왕 역할을 맡은 배우는 51세의 아서 리앤더로, 머리에 꽃을 꽂고 있었다. - P10

"자, 아서를 추모하며 한잔하시죠." 바텐더가 말했다.
아역배우 대기실에서는 타냐가 커스틴에게 문진을 주고 있었다. "자, 이거." 타냐가 문진을 아이의 두 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 계속 연락해볼 테니까 울지 말고 이 예쁜 거 보고 있어, 알았지?" 여덟 살 생일을 며칠 앞둔 커스틴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문진을 바라보면서 자기가 이제까지 선물로 받은 것 중에서 제일 예쁘고 멋지고 이상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안에 먹구름이 들어 있는 유리 덩어리였다.
바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술잔을 부딪쳤다. "아서를 위하여." 그들은 몇 분쯤 더 술을 마시다가 눈보라를 헤치고 각자의 길을 갔다.
그날 밤 바에 있었던 사람들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바텐더였다. 그는 3주 후 도시를 빠져나가는 도로 위에서 죽었다. - P26

7
마지막 항공 여행이 끝나고 20년 후, 유랑악단을 실은 마차들이 작열하는 하늘 아래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7월 말이었고, 선두 마차 뒤쪽에 달린 25년 된 온도계는 화씨 106도, 섭씨 41도를 가리켰다. 그들은 미시간 호 근처에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호수가 보이지 않았다. 나무들이 도로 양쪽에 다닥다닥 붙어 서 있었고 깨진 인도 사이에서도 자라고 있었다. 묘목들이 마차에 깔려 몸을 구부리면서 부드러운 나뭇잎이 말과 유랑악단 단원들의 다리를 간질였다.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가 무자비하게도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단원들 대부분이 말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었는데도 말들은 생각보다 훨씬 자주 그늘에서 쉬어야 했다. 잘 모르는 지역이라 빨리 지나쳐 가고 싶었지만 이런 무더위에는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천천히 걸었다. 배우들은 대사를 연습하면서, 연주자들은 그 소리를 무시하려고 애를 쓰면서, 정찰 당번들은 도로 전후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면서.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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