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산업 지대인 북부의 실업률이 아무리 끔찍한 수준이라 해도 런던에 비하면 빈곤이 (특히 극심한 빈곤이) 덜 두드러져 보인다. 모든 게 더 초라하고 누추하지만, 자동차도 적고 잘 차려입은 사람도 적지만, 확연히 궁핍해 보이는 사람도 런던보다 적다. 북부는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같은 큰 도시에서도 걸인이 적다는게 놀랍다. 런던은 버려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소용돌이와도 같은 곳이며, 워낙 거대해서 고독한 익명의 생활이 가능하다. 그리고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으며, 자기를 아는 이웃들이 많은 곳에서는 가당치도 않을 정도로 망가질 수도 있다. - P108

일자리를 잃는다고 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빈곤에 시달리는 지역들은 어떤 면에서는 생각만큼 사정이나쁜 게 아니다. 그들의 삶은 그럭저럭 정상이라 할 수 있으며 생각 이상으로 그렇다. 수많은 가족이 빈궁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 제도가 깨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긴축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운명에 발악하기보다는 생활수준을 낮춤으로써 상황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반드시 사치를 끊고 꼭 필요한 것으로만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흔한데, 잘 생각해보면 그게 더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례없는 공황기에 온갖 값싼 사치가 늘어나는 현실이 가능한 것이다.  - P119

히틀러가 라인 지방을 다시 점령했을 때 나는 우연히 요크셔에있었다. 히틀러나 로카르노, 파시즘이나 전쟁의 위협 같은 건 그곳 사람들의 스쳐가는 관심거리도 되지 못했다. 반면에 경기 일정을 미리 발표하지 않겠다는 축구협회의 결정은(축구 도박을 억제해보려는 시도였다)은 요크셔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아울러 배곯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퍼부어주는 오늘날의 전기 과학이 빚어내는 진풍경도 가관이다. 이불이 없어 밤새 떨다가도 아침이면 공공도서관에 가서 샌프란시스코나 싱가포르에서 전송한 뉴스를 읽는게 오늘날인 것이다. 영국에선 2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지만, 말 그대로 누구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먹는 것에서 생긴 결핍을 전기로 채우는 셈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전부 강탈당한 상당수의 노동 계급이 생활의 표피만을 누그러뜨리는 값싼 사치로 부분적인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보시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노동 계급이 겉으로나마 보이고 있는 적응은 그들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혁명적으로 변한 것도 자존심을 잃은 것도 아니다. 단지 노여움을 참고 ‘피시앤드 칩스‘ 수준에서 그럭저럭 견뎌 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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