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의 「나의 배후」(《문학》)가 읽을 만하다.

나의 등뒤에도
넘치는 물빛 세계.
허지만 그것은
실없이 주는 젊은 날의 꿈.
누구나
등뒤는 허전하다.
적막하게 건조한
운명의얼룩을 느낄 뿐.
나의 배후에는
아무도 없다.
- P621

이렇게 되면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체취란 뭐요?" 하고 필자의 체취의 설명이 미흡한 테에대한 공박을 오히려 받게 될 것 같다. 여기에 대한 성급한 답변으로,
이들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육성(肉聲)이 모자란다는 말을 나는 감히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당신이 말하는 육성이란 어떤 거요?" 이에 대해서는 나의 말이 아닌 그들의 동인의 한 사람인 김주연의 명석하고 진지한 시론 「시와 진실」에 나오는 말을 빌려 하자면, 그것은 ‘진실의 원점‘이다. 그는 ‘진실의 원점으로 가려는 피나는 고통 앞에서 언어는 부활하는 것이며, 언어와 시와 진실은 모두 하나의 디멘션에 늘어서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평자가 <사계> 동인들의 작품에서 일률적으로 받은 인상은 ‘언어‘의 조탁에 지나치게 ‘피나는 고통‘을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사계》의 동인들이 우리 시단의 신진들 중에서 가장 교양 있는 젊은 역군들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내가 요청하는 이런 초보적 시의 지식을 안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이 시는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시를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식으로쓰게 되는 것 같은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의 원인이 나변에 있는가 하는것까지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나는 그들에게 감히 말한다. 고통이 모자란다고! ‘언어‘에 대한 고통이아닌 그 이전의 고통이 모자란다고. 그리고 그 고통을 위해서는 ‘진실의 원점‘ 운운의 시의 지식까지도 일단 잊어버리라고. 시만 남겨놓은절망을 하지 말고 시까지도 내던지는 철저한 절망을 하라고. 그러나 아직도 이들은 젊고 이들은 이제부터 노력할 사람들이다. - P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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