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것을 쓰는 사람의 사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고, 후자는 전자의 부연이 되고 전자는 후자의 부연이 되는 법이다. 사카린 밀수업자의 붓에서 「두이노의 비가」가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진달래꽃을 쓴 소월은 자기 반의 부유한 아이들을 10여 명씩 모아 놓고 고가의 과외 공부를 가르치는 국민학교 6학년 선생이나 중학교 3학년의 담임 선생은 될 수 없었다. - P269
이 글의 첫머리에서 필자(이어령)는 ‘에비‘라는 말의 비유를 이렇게 말하고있다. "에비‘란 말은 유아언어에 속한다. 애들이 울 때 어른들은 ‘에비가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사용하는 어른도 그 말을 듣고 울음을 멈추는 애들도 ‘에비‘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고 있다. 즉 ‘에비‘란 말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니다. 그것이 지시하고 있는 의미는 막연한 두려움이며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안, 그리고 가상적인 어떤 금제의 힘을 총칭한다.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복면을 쓴 공포, 분위기로만 전달되는 그 위협의 금제감정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문화를 지배하는 ‘에비‘를 이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의 ‘에비‘는 결코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名詞)가 아닌‘ ‘가상적인 어떤 금제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명확한 ‘금제의 힘‘이다. 8.15 직후의 2~3년과 4.19 후의 1년 동안을 회상해 보면 누구나 다 당장에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 필자가 강조하려고 하는 점이 우리나라의 문화인들이실제 이상의 과대한 공포증과 비지성적인 퇴영성을 나무라고 독려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 필자의 말대로이러한 반문화성이 대두되고 있는 풍토 속에서 한국의 문화인들의 창조의 그림자를 미래의 벌판을 향해 던지기 위해서‘, ‘그 에비의 가면을 벗기고 복자(伏字) 뒤의 의미를 아무리 ‘명백하게 인식해 보았대야 역시 거기에는 복자의 필요가 있고 벽이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의 복자와 벽을 문화인도 매스 미디어도 뒤엎지 못하기 때문에 일이 있을때마다 번번이 학생들이 들고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이 필자는 끝머리에 가서 ‘우리는 그 치졸한 유아 언어의 ‘에비‘라는 상상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다시 성인들의 냉철한 언어로 예언의 소리를 전달해야 할 시대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소설이나 시의 ‘예언의 소리‘는 반드시 냉철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예술의 본질을 생각해 볼 때 필연적으로 ‘상상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은 ‘유아 언어‘이어야 할 때가 많다. 특히 오늘날의 이곳과 같은 ‘주장‘도 ‘설득‘도 용납되지 않는 지대에 있어서는 더말할 것도 없다. - P300
이어령 씨의 이번의 나에 대한 반론은 거의 전부가 이런 식의 모함으로 충만되어 있고 이것을 일일이 가려낼 만한 의미를 나는 느끼지않는다. 다만 나의 창작 자유 고발의 실제적인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설명해 두고자 한다. 비근한 예가, 지금말한 이어령 씨의 규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나의 소위 ‘불온시‘다. 지금 말한 것처럼 이어링 씨는 내가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온한‘ 작품이라고 규정을 내리고 있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발표를 하면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어서 발표는 못하고 있지만, 결코 불온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나의 자유의 고발의 한계는, 이런 불온하지도 않은 작품을 불온하다고 오해를 받을까 보아 무서워서 발표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이어령 씨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작가나 시인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아니 이들에게만 이들의 역량이 부족해서있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장해 세력이 우선 대제도의 에이전트들의 획일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나는 지적했다. 그런데 이어령 씨는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을 기관원도 단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불온하다‘고 단정을 내림으로써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이 불온하지 않게 통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하자는 나의 설명을 거꾸로 되잡아서, ‘불온하다고 보여질 우려가 있는 작품‘이 바로 ‘불온한 작품‘이니 그런 문화 풍토가 조성되면 문학이 말살된다고 기관원이 무색할 정도의 망상을 하고 있다. 이런 망상은 문학 이론으로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1968.3. - P309
요즈음 잡지사의 권유로 ‘시 월평‘이라는 걸 써 보았는데, 그 바람에 시는 통 못 썼다. 시인은 심판을 받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 시인이 심판을 하게 되면 불필요한 번민을 하게 된다.(남에게 얻어먹은 욕은 즉석에서 철회할 수 있지만, 남에게 한 욕은 철회하기가 매우 힘들다.) 또한 사기를한다. 심판을 하자면 올가미를 씌워야 하는데 이 올가미에 자신까지걸려들기는 싫다. 자기가 걸려드는 올가미는 시를 다칠까 보아 싫고 자기가 걸려들지 않는 올가미는 비평이 거짓말이 되니까 싫다. 나의 월평이 게재된 같은 잡지에 소설평을 담당한 H씨의 글에 이런 말이 나와 있다. "......특히나 요새처럼 작가의 정치색을 가장 날카롭게 작품속에 구상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있을 때 이러한 유행을의식적으로 회피한다는 것은 어쩌면 성실한 작가의 자세라고 봐야 옳을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앗차!‘했다. 지금 말한 것처럼 H씨의 소설평이 실린, 같은 잡지에 나의 시월평이 그분의 글과 나란히 게재되어 있다. 이달뿐이 아니라 지난달 호에도 어깨를 나란히 해서 나는 시 월평을 쓰고 그분은 소설 월평을 썼다. 이달뿐이 아니라 다음 달 호에도 어깨를 나란히 해서 나는 시 월평을 쓰고 그는 소설 월평을 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난달에도 이달에도 시의 현실 참여를 주장해 왔고 내달에도 그것을 주장할 참이다. 그런데 아까와 같은 그분의 글을, 내가 쓴 글을 읽는 끝에 마을 가는 기분으로 읽던 중에 발견한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연 3회를 현실참여의 월평을 써 온 끝이라 또 다음 호에도 똑같은 논지를 내세우는것이 변화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좀 의아한 생각을 품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재빨리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이 그런 말을 암시해놓았다. - P345
오늘날의 시가 골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회복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의 상실이라는 가장 큰 비극으로 통일되어 있고, 이 비참의 통일을 영광의 통일로 이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다. 그는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산다. 여기에 시의 새로움이 있고, 또 그 새로움이 문제되어야 한다. 시의 언어의 서술이나시의 언어의 작용은 이 새로움이라는 면에서 같은 감동의 차원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 현실이 담겨 있느냐 아니냐의 기준도진정한 난해시냐 가짜 난해시냐의 기준도 이 새로움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 요즘의 시단 저널리즘은 현실 참여의 시라고 해서 무조건 비참한 생활만 그려야 하는 것같이 생각하고, 신문 논설란류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작품들을 도매금으로 난해시라고 배격하는 성급한 습성에 흐르고 있다. 우리의 주위는 모든 정경이 절박하기만 하다. 눈으로는 차마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일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참말로 눈을 돌릴 곳이 없다. 우리의 양심의 24시간은 온통 고문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시는 좀 더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시의 양심을 지킬 만한 여유는 가져야 할 것 같다. 시대는 언제나 성인(聖人)이 되라고만 하지 시인이 되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을 만들어야 할 때도 성인이 되라고 한다. 이런 유혹에 쏠려들 때 항용 가장 위험한 자위의 시가 나오기 쉽다. - P355
국민가요가 추상적인 것이 되지 않으려면 그것은 국민의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노래가 되어야 하고, 한 사회에서 노래가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려면 우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북의 노래도 식민지의 노래에 지나지않으며, 그것은 너무나 ‘씩씩하고 건전한‘ 식민지의 노래다. 우리들은 이제 이북식의 ‘씩씩하고 건전한‘ 잠재의식에서 벗어날때가 왔다. 언젠가 대학생들의 단식 데모에서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익살스럽게 풍자한 노래가 읊어진 것을 보았는데, 국민가요의 정신은 단적으로 말해서 그러한 것이다. 그것은 철두철미 하극상의 정신이다. 따라서 좋은 국민가요가 나오는 사회는 진정한 기골 있는 야당과 노동조합다운 노동조합이 있는 사회이며 청년들이 살아 있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에 좋은 국민가요가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천재적인 작사자나 작곡가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남북통일과 현대 공업화의 비전이 아직까지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 P367
그러나 이렇게 남의 일만 이야기하다 보니 어쩐지 내 발밑이 불안해진다. 지난 4개월 동안 본지에 ‘시 월평‘이란 것을 쓴 것을 반성해볼 때 정말 정직한 말을 썼는가 하는 자책감이 든다. 나도 어느 사이에 ‘적당히‘ 쓸 줄 아는, 때가 묻은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든다. 나는 아직도 글을 쓸 때면 무슨 38선 같은 선이 눈앞을 알찐거린다. 이 선을 넘어서야만 순결을 이행할 것 같은 강박관념. 우리는 무슨 소리를 해도 반 토막 소리밖에는 못하고 있다는 강박관념. 419 후에 8개월 동안 잠깐 누그러졌다가 다시 굳어진 강박관념. 나는 몇 년 전까지만도 이러한 강박관념을 우리나라만의 불행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거기에 세계의 얼굴이 담겨 있는 것을 알고 약간의 안도감을 느낄 수있었지만, 여기에 비친 세계의 얼굴이 이중이나 삼중 유리 결장에 비치는 얼굴 모양으로 윤곽이 엇갈려서 어떤 것이 어떤 얼굴인지 분간함수 없게 되는 새로운 불안이 생겼다. 따라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38선이 없어지면 그것은 해소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38선이 없어져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또 다른 선이 얼마든지 연달아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 서 있다. 35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자유가 없고 민주주의가 없다는 귀결이 온다. 민주주의가 없는 나라에서는 작가의 책무가 이행될 수 없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러한,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수수께끼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이북보다 이쪽이 ‘비교적‘ 자유가 있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는 말대답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가 있는 사회다. 그런데 이 지대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절대적인‘ 권리에 ‘조건‘을 붙인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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