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몬토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 무리는 들판을 가로질러 이동하면서 각기 자기가 좋아하는 식물을 주로 먹는다. 덕분에 비교적 좁은 지역 안에서도 식물의 종류와 밀도가 다른 땅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생긴 모자이크 서식지는 생명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 P202

새로 생긴 숲은 살아남은 공룡과 다른 동물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 새로운 생태계는 멸종 이전의 세계와는 달랐지만 다양성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지구가 대재앙에서 치유되면서 자연의 회복력이 온전히 드러났다.
나는 공룡이다. 우리가 대멸종 이후에야 새롭게 등장한 게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 그 덕분에 6600만 년 전 다섯 번째 대멸종 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부리와 비대칭형 깃털이 있는 작은 공룡이다. 덕분에 나는 날 수 있다. 거대한 티라노사루우스가 사라진 이 생태계에 아직 새로운 지배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차피 큰 놈들은 존재하지 않고 나는 하늘을 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혁신의 결과다. 처음에는 체온을 조절하고 짝에게 과시하기 위해 쓰던 깃털로 하늘을 날 수 있게 진화했다. 양력과 기동성을 제공하는 양 날개를 갖추었다. 나는 몸을 가볍게 하는 데 성공했다. 뼛속을 비워 몸무게를 줄이고 비행 효율을 높였다. 선조들이 주로 거대한 목을 받치는 데 사용했던 기낭, 즉 공기주머니를 호흡에 사용해 비행에 필요한 높은 신진대사를 감당하게 했다. 의외로 결정적인 변화는 부리였다. 대재앙이 닥치자 부리는 매우 유용했다. 다양한 먹이원을 이용할 수 있었다. - P212

그렇다면 공룡은 아니라도 파충류이기는 할 것 같은가? 놀랍겠지만 나는 파충류도 아니다. 단궁류에 속한다. 단궁이란 구멍이하나 있다는 뜻이다. 무슨 구멍일까? 두개골 뒷부분에 양쪽으로 난측두창이라고 하는 구멍을 말한다. 여기에 구멍이 없으면 무궁류다. 거북이가 그렇다. 구멍이 2개 있으면 이궁류다. 익룡과 공룡이 여기에 속한다. 공룡이 여기에 속하니 새도 여기에 속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뿐만 아니라 악어, 뱀, 도마뱀도 이궁류다. 거북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파충류와 조류가 이궁류인 셈이다.
단궁류는 구멍이 하나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단궁류는 트라이아스기 대멸종기, 즉 네 번째 대멸종 때 몰살되었지만 살아남은 것들은 나중에 포유류로 진화한다. 이궁류와 단궁류 사이에는 결정적인차이가 있다. 바로 이빨의 종류다. 공룡 같은 이궁류는 이빨이 다 똑같이 생겼다. 모양이 한 가지다. 그런데 단궁류는 이빨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여러 가지 이빨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궁류, 단궁류, 이궁류 중 어디에 속할까? 자기치아를 보면 답이 나온다. 사람의 치아는 여러 가지 모양이다. 그렇다. 인간은 단궁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디메트로돈은 공룡처럼 생겼지만 공룡보다는 사람에 더 가까운 동물이라는 뜻이다.  - P234

페름기 말기는 식물상이 매우 다양하고 풍요로운 시절이다. 윗부분이 붓처럼 생긴 양치식물 속새는 습한 지역에 번성하고 있다. 무수한 양치식물이 숲 바닥에 카펫처럼 깔려서 초식동물의 먹이가되고, 나무고사리와 겉씨식물들이 햇빛을 받기 위해 높이 뻗어 있다. 대부분의 겉씨식물은 침엽수다. 현대 소나무와 전나무의 조상뻘 되는 나무들이 우뚝 솟아 있다. 바늘처럼 생긴 잎과 솔방울은 점점 건조해지는 기후에서도 잘 버티고 있다. 노란 잎이 아름다운 은행나무도 숲 구성원 가운데 하나다. 아직 활엽수는 등장하지 않은시기지만 은행나무는 있다. 왜냐하면 은행나무는 활엽수가 아니라 침엽수이기 때문이다. 넓은 은행잎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만져보면 무수히 많은 바늘이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P236

나는 세 번째 대멸종의 목격자로서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남긴다.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한다. 또 최고 포식자가 아니라고하더라도 생물량이 가장 많았던 생물은 반드시 멸종한다. 보통 두가지를 겸하는 일은 없다. 먹이 피라미드의 가장 위를 담당하는 최고 포식자는 생물량이 적고,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물은 먹이 피라미드의 아래쪽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최고 포식자이면서 생물량도 가장 많은 별난 생명이 등장할지. 만약 그렇다면 그 생물 좋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생명일 것이다. 가장 성공적이지만 대멸종의 시기에는 가장 파멸적인.... - P249

광합성의 결과는 무엇인가? 첫 번째 결과는 화학에너지 생성이다. 태양에너지가 아무리 많아봤자 동물들은 사용하지 못한다. 태양에너지는 오로지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와 식물의 몫이다. 식물광합성이 늘어나자 태양에너지가 어마어마한 양의 화학에너지로 전환되어서 식물이 번성했고 그 덕분에 동물들이 활용할 에너지가 풍성해졌다.
광합성의 두 번째 결과는 산소 기체 생성이다. 식물이 만들어놓은 화학에너지를 태워서 생활에너지 ATP로 전환하는 데 꼭 필요한게 산소다. 동물이 몇 분만 숨을 쉬지 못해도 죽는 이유가 바로 생활에너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석탄기 숲은 산소를 엄청나게 많이 생산했다. 대기 중 산소 농도가 35퍼센트에 달했다. 이게 어느 정도냐고? 현대 대기의 산소 농도가 21퍼센트라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 P258

삼엽충이 고생대 바다에서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을 개발했다. 눈이 생기기전 고생대 동물의 삶은 매우 힘들었다. 동물들은 오로지 촉각과 화학적 신호에 의존해 먹이를 찾고 위험 요소를 피했다. 솔직히 말하면 찾고 피하는 게 아니라 거의 우연에 의존해야 했다. 입을 벌리고다니다가 누군가 입에 들어오면 맛있게 먹고, 내가 누군가의 입에들어가면 재수 없게 죽는 거였다. 우리 삶에는 목표라는 게 없었다.
그런데 자연사에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생명에게 눈이 열리자 각자의 삶에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도망가고 누구를 쫓아가야 하는지 한눈에 깨달았다. 눈이 새로운 우주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상이 갑자기 선명하고 활기차게 보였다. 멀리서 다가오는 포식자를 볼 수 있었고, 돌틈에 숨어 있는 작은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눈을 통해 동료들과 신호를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생명의 색깔과 모양이다양해졌다. 그리고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눈이 등장하자 생명의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생명의 빅뱅이 일어났다. - P295

다윈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눈의 진화에 있어 그럴듯한 중간단계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각 단계는 기능적이어야 하고 생명체에선택적 이점을 제공해야 했다. 완벽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부분적으로만 형성된 눈이 어떻게 유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연 선택을 통해각 발달 단계가 어떻게 보존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과제였다.
다윈은 자연 선택이 어떻게 목적에 완벽하게 적응한 기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렇게 복잡한 기관이 의도적인설계 없이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처럼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우려에도 다윈은 눈의 진화가 자신의 이론에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의구심에 대해 몇 가지 요점을 제시했다.
다윈은 현생 생물의 눈의 복잡성 수준이 다양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요즘도 단순한 빛에 민감한 세포부터 척추동물의 복잡한 카메라 같은 눈까지 자연계에는 다양한 수준의 눈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서로 다른 수준의 시력을 제공하는 수많은 중간 형태가 존재할 수 있는 진화 경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다윈은 빛에대한 감도나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이 조금만 향상되어도 생존에상당한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눈의 진화에 있어 각 중간 단계는 유익할 수 있으며 자연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윈은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변화의 힘을 강조했다. 작은 점진적 개선이 쌓여서 매우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단순한 감광 패치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면 결국 잘 발달된 눈을 만들 수 있다. 다윈은 자신의 이해와 당시의 과학적 지식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미래의 연구와 발견이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의 진화에 대한더 많은 통찰력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역시 다윈의 후예들은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다양한 형태의 눈이 고도의 복잡성을 지니게 된 배경은 단순하다. 지구에는 태양에서 날아온 빛이 매 순간 빗발치듯 쏟아지기 때문이다. 빛은 색이 있는 물질에 부딪히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는 형태가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약간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 에너지는 어떤 식으로든 세포에 영향을 주고 여기서 시각이 시작된다. - P303

일단 눈이 생기고 나자 가장 큰 선택압력으로 작용했다. 생존을 위한먹이 동물의 첫 번째 법칙은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먹이는 대개 눈이 양쪽에 있다. 선명한 상을 형성하지는 못해도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포식자의 첫 번째 생존 원칙은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포식자나 경쟁자에 대한 걱정은 그다음이다. 사냥을 위해서는 정확한 거리 측정이 필요하다. 이들은 한 쌍의 눈을 앞쪽에 배치했다.
눈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모든 동물은 빛에 적응해야 했다. 벌레같았던 동물들은 갑옷을 두르고, 경고색을 과시하고, 위장 형태와 위장색을 띠거나, 추적하는 적을 따돌릴 수영 실력을 갖춰야 했다.
입은 그다음이었다. 원시 삼엽충에게는 먹이를 잡을 튼튼한 다리도 물어뜯을 단단한 턱도 없었다. 원시 삼엽충은 자기 주변을 유유히 떠다니는 이웃들을 보면서 딱딱한 부분을 가져야 한다는 선택압력을 받았다. 결국 원시 삼엽충은 명실상부한 삼엽충이 되었고, 다른 동물들 역시 갑옷을 갖추기 시작했다. 캄브리아기에 갑자기 나타나서 다윈을 곤혹스럽게 했던 화석생물들의 등장은 결국 눈의 탄생으로 촉발된 것이다. - P306

눈의 조상은 누구일까?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눈은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려면 눈이 있는 모든 동물이 진화의 계통수에서 갈라져 나오기 전에 눈이 진화했어야 한다. 조상 눈이 있던 동물은 삼엽충(절지동물)이나 갑오징어(연체동물), 사람(척삭동물)처럼 눈이 있는 모든 동물의 조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눈은 캄브리아기가 시작되기 수억 년 전에 이들 동물이 갈라설 때 진화했어야 한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먹장어와 사람은 모두 척삭동물에 속한다. 먹장어처럼 원시적인 척삭동물에게는 눈이 없는데, 그보다 훨씬 늦게 생긴 사람에게 눈이 있다면, 척삭동물 최초의 눈은 진화계통수의 척삭동물 가지 안에서 진화했다는 얘기가 된다. 눈의 기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 것이다. 삼엽충이나 갑오징어나사람의 눈은 진화의 다른 시점에 각각 별개로 진화한 것이다. 현대연구에 따르면 눈은 적어도 40회, 많으면 60회까지 동물계의 여러부분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우리 삼엽충의 눈과 그대 인간들의 눈은 기원이 다르다. - P307

미토콘드리아의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진핵생물의 건강과 기능에 여전히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포 안에서에너지를 만드는 발전소 역할을 한다. 근육, 심장, 뇌처럼 에너지수요가 많은 조직의 기능에 특히 중요하다. 미토콘드리아의 영향력은 기본적인 기능을 넘어 건강과 수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산, 물질대사, 세포 조절에 있어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주요 법도 바꾸었다. 호주제란 가족 집단의 중심이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남계혈통을 통해 대대로 이어지는 제도다. 호주제에 대한 찬반이 수년 동안 지속되고 있을 때 내가 논의의 중심에 등장했다. 미토콘드리아는 고유의 유전자를 가지고있는데,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를 통해서만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최재천 교수가 법률 토론의 현장에 소개한 것이다. 즉 후손은 수컷보다 암컷에게서 더 많은 유전자를 받는다는 사실이 널려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여론의 흐름이 바뀌면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2008년 1월 1일부터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 P325

달 - (더욱 빛나며) 지구 냉각이 계속되면서 자네 바다가 깊어지더군. 역시 깊은 바다가 생기니까 훨씬 안정되어 보였어.
그런데 말해보게. 생명을 탄생시킨 화학작용의 핫스폿이어디였나? 정말로 그 깊은 바다에 있는 열수분출구가 맞는가?
바다 -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열수분출구는 열과 미네랄이 풍부해서 유기 분자 합성을 위한 완벽한 공장이야. 여기가 초기 생명의 요람이 되었지.
달 -
(생각하며) 열수분출구 주변은 극한의 조건이잖아. 깊은 바다니 수압이 매우 높을 테고 수압이 높으면 끓는점도 당연히 높아져서 아주 뜨거운 액체에서 온갖 화학작용이 일어났을 거야. 그러다가 생명체들이 만들어졌겠지. 그러고보면 심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을것 같아.
바다 -
(자랑스럽다는 듯이) 맞아. 열수분출구는 영양분이 풍부한환경이었어. 여기서 이런저런 생명의 시도들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모든 생명의 공통조상인 루카가 등장했어. 루카에서 생명의 나무가 가지를 뻗기 시작했지.
그것도 벌써 38억 년 전의 일이 되었네. 정말 까마득한 옛날이지
달 -
(고개를 끄덕이며)생명 진화의 과정에 내 역할도 잊지 말아줘. 내가 중력으로 지구의 물을 섞어 영양분과 에너지가광활한 지구 공간에 골고루 퍼지도록 했잖아. - P333

달(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뭘 어떻게 해? 아예 단단한 껍질을만들면 되지. 삼엽충처럼 말이야. 그게 바로 캄브리아기대폭발이잖아. 단단한 껍데기가 생기니까 산소가 마음대로 확산되지도 않고 단단한 껍데기가 있으니 이제부터는몸을 얼마든지 더 키울 수도 있게 된 거지.
바다(부드럽게 소용돌이를 만들며) 맞아. 산소 농도가 높아질수록더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를 만들면서 산소의 독성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동시에 산소호흡을 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 거지. 아마 지구에 산소가없었다면 지구는 결코 아름답지 못할 거야. 마치 화성과같은 붉은 행성으로 남았겠지.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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