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주를 오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간과한 것이 하나있었다. 의식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무엇‘이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구원하려 했는지 기억했다면, 가슴에 칼이 박히는 찰나에 기어코 상대의 눈에 젓가락을 찔러넣은 걸 기억했다면 나는 사전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본성에 웅크리고 있는 ‘무엇‘이 무엇인지.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 P519

홀로그램이 내 형상을 완전히 복구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언젠지도 모르게 불려 나온 여우가 모닥불 앞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간 어디 갔다 왔느냐 묻듯 흘끔흘끔 나를 곁눈질하면서 시야정면에 나타난 메일함에서 빨간 불빛이 깜박거렸다. 칼잡이로 살다온사이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손가락을 뻗어 읽기 버튼을 눌렀다.

이해상 박사님께.
저는 8차 시험단으로 업로드된 이윤세라고 합니다••••••. - P5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