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주를 오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간과한 것이 하나있었다. 의식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무엇‘이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구원하려 했는지 기억했다면, 가슴에 칼이 박히는 찰나에 기어코 상대의 눈에 젓가락을 찔러넣은 걸 기억했다면 나는 사전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본성에 웅크리고 있는 ‘무엇‘이 무엇인지.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 P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