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이 어디나 군기, 텃세 같은 게 엄청 심해요. 그자리 하루만 일하고 그만둔 사람 엄청 많아요. 핫파트가 일도 힘들지만, 관리자가 옆에붙어서 그렇게 쪼니까 스트레스받아서 못 견디고 나가요."
"근데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게 사람들이 금방 그만둬서 힘들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몰아대는 거예요? 어떻게든 데리고 있으려고 애를 써야하는 거 아녜요?"
"아니죠. 어차피 그만둘 사람이면 그래서 막 대해도 상관없는 거고. 있을 사람이면 누가 서열이 높은지 확실하게 보여줘야죠. 주방은워낙 일이 많고 힘드니까 위아래가 확실하게 잡혀 있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아요. 여기선 핫파트가 제일 심해요. 저도 사람 없다고 해서 핫파트 몇번 불려간 적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핫파트 계속해야 하면 그만둔다고 해서 다시 콜드로 옮긴 거예요. 아마 지금 많이 힘드실 거예요."
인원 부족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사람에 미련이 없는 데에는 주방 사람들의 자부심도 한몫했다.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은 ‘화‘가 중심에 자리잡은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래, 할 수 있어!‘가 아니라 ‘씨발 다 덤벼!!
류의 자신감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과로와 야근으로 점철된 주방생활을 ‘나 아니면 식당이 안 돌아가!‘ 하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오래 일한 사람은 누구나 가슴 한편에 이 생각을 품고 일한다. 심지어는 나조차도 한두 달 지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뜨내기 한둘이 사라지는 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들이 있건 없건 어차피 내가 여기서 제일 힘들고 일도 제일 많이 하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신입 직원에게 살갑게대할 이유도 없다. 결국엔 내가 다 하게 될 테니까. 겸손한 래퍼를 힙합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듯이 일당백이 아닌 요리사도 요식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 P213

"너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알바는 정말 몰라안 겪어본 사람은 알 수가 없어. 내가 <동물의 세계> 이런거 보는 거 좋아하거든. 거기 보면 아프리카 초원에서 표범이 토끼나 새끼 가젤 같은거 잡으려고 전속력으로 막 달려가, 그러면 조그만 동물이 눈에 핏발 세우고 도망을 친다고, 목숨을 걸고 도망가. 내가 그걸 보고 있으면 무슨생각이 드는 줄 알아? 쟤네들은 내 마음 알 거라고. 온 세상에서 딱 채네들만 지금 내 기분 이해할 거라고. 장사하는 사람 심정이 딱 그거야. 사자가 등 뒤에서 입 벌리고 쫓아오는데 어떻게든 안 잡히려고 도망치는 거. 인건비에 배달비에 재료비에 대출에 적자에 어? 어? 하다가 따라잡히면 그대로 끝장나는 거거든. 그러니까 똥구멍에서 피가 나게 뛰어다니는 거지. 그나마 야생은 편한 거야. 사자는 한 5분 따라오다 안 된다 싶으면 포기라도 하지. 우리는 안 끝나. 혀가 입 밖으로 빠져나와서너덜거릴 정도로 도망을 치는데 그게 안 끝나. 계속 쫓아오고 계속 도망가. 그렇게 19년을 살아봐. 식당 하는게 그런 거야." - P244

"촬영하다 모여서 다들 그 얘기 하거든. ‘이렇게 찍어도 이거 어차피아무도 안 봐.‘ 나도 하다 보면 그런 생각 자주 드는데 그때가 제일 비참해. 진짜 그 기분은 말로 다 못 해. 이런 데가 오히려 돈은 꼬박꼬박 잘챙겨줘. 근데 그런 게 문제가 아니야. 이런 현장 오래 있으면 진짜 폐인돼. 사람이 망가져"
나는 막연히 이들이 이 업계에서의 경력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다들 쉬쉬하며 숨기고 싶어 할 거라고 말이다.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이 봐주기만 한다면, 보고서 즐거워한다는 확신만 든다면 그들은 더 적은 돈, 더 긴 시간도 얼마든지 감내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고는 철저히 낭비되어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의 노력이 이 세상 어디로도 어느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는 사실 때문에 가장 괴로워했다. - P248

논픽션은 공동체의 투병기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육체의 상처와 고통뿐 아니라 세대와 시대가 앓고 있는 병을 고백하는 글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작가의 역할은 고름이 질질 흐르는 환부가 되는 것이다.
그가 쓸모없다고 확신하는 종류의 책은 끝까지 읽고 나서 작가의 결점을(글의 결점이 아니라) 하나도 발견할 수 없는 책이었다. 그런 책이라면 차리리 쓰지 않는 편이 나으리라. 자신의 못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서 작가로서 정확해질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저에게 조언을 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조언과 교정은 이미 끝난것입니까?그래서 남을 지도할 여유가 있는 것입니까?"
나의 마음도 그렇게 비틀어지지는 않았네. 나 자신이 병이 들었는데 남을 간호하지는 않지. 마치 같은 요양소에 누워 있듯이 자네와 공통된 병고에대해 이야기하면서 치료법을 서로 나누고 있는 것이네. 그러니 부디 들어주길 바라네."
#《세네카 삶의 지혜를 위한 편지》, 세네카, 김천운 옮김, 동서문화사, 2016. - P381

그러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누이트족이 특별했던 점은 하나였다. 그들은 날씨가 더 추워질 수 있다는 걸 예상했다. 그것뿐이었다. 반면에 텍사스인은 지금 날씨가 어떤지만 생각했다. 텍사스인이 이보다 추워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을 때, 이누이트족은 더 혹독한 추위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날씨가 실제로 더 추워졌을 때 텍사스인은 무너졌고 이누이트족은 버텨냈다.
세상은 오늘도 날카로운 한기로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하리라. 다가오는 시간은 지금보다 아주 아주 많이 더 추우리라는 사실을.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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