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과 다르게 과거 집들의 문은 오직 하나뿐인 형태로 존재했다. 마치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문 또한 그랬다. 문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그 집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저택의 문 앞에 서면 그 집과 첫인사를 나누는 기분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각각의 문들은 서로 다른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 때론 무섭게, 때론 무표정하게, 때론 웃음 지으며…사람의 표정과 닮은 존재, 그게 바로 대문이다. - P51
"원장님. 아까 그 복도, 아니 통로라고 부르던 그 공간은 도대체 뭐죠?"
"우리는 그 통로를 자연의 나팔관, 자연의 통로라고 불러요. 거기는 사람이 지나는 통로가 아니에요."
"네? 사람이 다니는 복도가 아니라 자연의 뭐라고요?"
"아까 수잔 부인이 뤼미에르 씨를 발견한 곳은 야외 테라스이면서 동시에 복도예요. 그 테라스 복도 기억나세요?"
"수잔 부인이 누구죠? 아, 아까 제 손을 잡으셨던 그분이요?"
"네, 실어증을 앓고 계신 할머니요. 그분이 계셨던 곳, 기억하시나요?"
"경황이 없어서 기억이 나질 나네요."
"바로 그곳이 바깥 자연과 연결된 외부 테라스 복도였어요. 외부 테라스는 건물 뒤편 온실과 이어져 있죠. 밖에서 보면 분명 테라스인데 건물 안에서 보면 복도인 공간이죠."
"아, 그래요? 그런데 나팔관은 뭐죠?"
"그 공간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듣고 향기도 맡을 수 있어요.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요. 예를 들면 꽃향기, 풀잎 내음도들어오고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있죠.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음악을 듣는 거예요. 더불어 ……아침햇살이 그 틈으로 들어올 때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답니다. 저희 병원에 계신 분들은 모두 그 공간에서 귀를 기울이거나 가만히 바라보세요. 그곳에 들어가려고 애쓴 분은 오늘 처음 봤어요." - P82
웅장한 종탑은 나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거인 같았다. 저종소리가 울리면 이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종탑으로 시선을 향할 것이다. 소리는 과연 얼마나 멀리까지 퍼질까? 건축가는 종탑을 설계할 때 이웃 종탑과 겹치지 않는 범위와 어디까지 들리게 할 것인지를 고려한다. 베니스국제건축포럼에 참여할 때 만났던 건축대학의 돌체타 교수는 베네치아사람들이 같은 종소리를 듣는 사람과 연대감을 느낀다고 알려주었다. 베니스에는 수많은 작은 광장과 성당 그리고 종탑이 있다. 그러나 한 종탑의 소리는 주변 다른 종탑과 소리가 섞이지 않는다. 지도상의 행정구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는 종탑의 소리가 같은 지역 주민이라는 연결고리는 만드는 셈이다. - P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