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있어?"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그건데, 사실 그런 일들이 별로 남아 있진 않아. 뇌 과학이라든가 분자생물학 분야에는아직 혁명거리가 남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진짜 혁명 얘기야. 진짜로 세상을 바꾸고사람들의 존경을 얻는 일에 대한 얘기. 진짜 영광스러운 일은 그런일에 있지. 실패하더라도 칭찬을 듣는 일이라니까. 그런데 그런 일들은 이미 워싱턴이라든가 링컨이라든가 애덤스라든가 마틴 루터킹 같은 사람들이 다 해버렸어. 동성연애자들이 결혼할 권리까지 이미 누가 먼저 주장해버렸다니까."
"그래서, 너는 목표가 있어?"
"있지."
"뭔데?"
"아직은 네가 들을 준비가 안 돼 있어."
재키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너는 내가 죽은 다음에나 준비가 될 거야."

세연은 그해 6월에 죽었다. - P70

모든 혁명의 목소리가 처음에 그랬듯이. 우리의 주장은 다듬이져 있지 않다. 아마 당신은 우리보다 더 빈틈없는 논리와, 손실을줄이면서도 더 효과적인 수행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산 혁명을 주장했지만, 공산 혁명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과 이 세대의 운명에 대한 우리의 분석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넓은 의미의 선언자다. 누군가가 와이두유리브닷컴을 ‘부모 덕택에고생 모르고 자란 배부른 녀석들의 복에 겨운 헛소리‘ 라고 매도하려들 때 "그 방식은 과격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라고 맞서며 우리의 논리를 그 자리에 소개한다면 당신은 선언자다. 우리 세대가 하루하루 좌절에 빠지는 이유가 우리 개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그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당신은 우리와 같은 편이다.
다만 나는 당신들이 ‘자살 선언‘의 대안으로 길거리에서 플래시몹을 하거나 서명 운동을 벌이거나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거기에글을 올리는 일 따위는 고려하지 않기를 바란다. 청년 연대니 청년노조니 하는 단체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별 효과가 없으리라는것이 뻔히 보이는 데 더해, 무엇보다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공격은 언제나 번개같이 빠르고, 위협적이어야 한다. - P182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표백 세대‘ 의 등장이다.
이 세대에게는 실질적으로 어떤 사상도 완전히 새롭지 않으며, 사회가 부모나 교사를 통해 전달하는 지배 사상에 의문을 갖거나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런 시도는 기껏 잘돼봤자 기존 지배 사상이 얼마나 심오하고 빈틈없는지를 더 잘 이해할수 있게 되는 효과만 낳는다.
이들에게 지배 사상은 큰 틀에서 항상 옳으며,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개인마다 과정과 깊이가 다를 수는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같다. 이들은 지배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따라서 실제 삶에서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인이나 작은 이익집단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되며, 세계는 사상적으로 완전무결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표백 과정이다. 아무도 더 나은 시스템을 떠올리지 못한다. 거대한 흰색 세계는 모든 빛을 흡수하며 무결점 상태를 유지한다. - P191

이런 한계 속에서 표백 세대의 내면은 추하게 일그러진다. 그들은 자신의 역사적인 위치나 사명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 없으므로 역사 의식이 희박해지며, 민족주의처럼 그들의 자존감을 손쉽게높여줄 수 있는 불합리하고 값싼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
박탈감과 좌절감은 뿌리 깊이 박혀 있지만 이런 좌절감은 집단적인 분노로 발전하지 못한다. 투쟁은 손해 보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 다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선배와 상사, 기성세대를 찢어죽일 것처럼 성토하다가도 면접 시험장에서는 한없이 고분고분해지고 공손해진다.
패배를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 중 몇몇은 정면승부를 벌이고 작은 이득을 위해 아득바득 싸우는 태도를 촌스럽다고 여기게 된다. 기왕에 지는 것, 한발 물러난 자세로 "나는 크게개의치 않는다"와 같은 태도를 보이거나 아예 싸움을 피하는 것이그나마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다. 그것이 ‘쿨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진정으로 새로운 주장이나 사상이 없는 상태에서 조롱과 비아냥거림, 의미 없는 장난이 이 세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 P197

마르크스는 노예는 자신의 노예적 존재를 지속할 수 있는 일정한 조건을 보장받는 데 비해 노동자는 그 계급적 지위가 점점 가라앉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노동자는 노예보다 더 비참하다고 주장했다.
표백 세대는 정신적인 면에서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보다도 더한심한 처지에 있다.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라는 ‘다음 단계‘를 꿈꾸며,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주체로서 뚜렷한 이념과 이상을 갖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표백 세대는지배 이념에 맞서 그들을 묶어주거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념이없으며, 그렇기에 원자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낙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이상향은 있을 수 없기에, 표백 세대는 혁명과 변혁에 관한 한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 P199

자살 선언에 대한 내 반론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세연은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무가치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것을 우리 모두 잘 알잖아. 우리가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 종으로서잘 가꿔진 숲길을 걸을 때 거부할 수 없는 작고 소소한 기쁨을 맛본다면, 그 숲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가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어. 좋은음악이나 그림, 음식을 즐기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본능적인 것이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만들거나 만드는 기술을 갈고 닦는 데에는 왜우리가 그걸 해야 하는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애써 설명해야할 필요가 없어. 그러니 그런 일을 하면서 보내는 삶에도 가치는 있는거야.
‘인정에 대한 욕구‘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패배나 사회 변혁이 없어도 적절한 수준에서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실제로 평범한 사람들은 승진을 하거나 표창을 받았을 때 그런 욕구가 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떤 업적에 대한 욕망이랄까, 자부심을 충족시키는 데에도 그 거래를 내가 성사시켰다. 저 건물을 짓는 데 내가 참여했다. 저 길을 여는 데 내가 힘을 보탰다. 저 정책이 바뀌는 데 나도 일조했다. 이런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 앞의 세대라고 해서그 사람 중 어느 누구 한 명이 자기 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것은 아니잖아. 그네들이 가진 자부심도 하나하나 쪼개놓고 보면 나도 가방 하나 들고 해외 출장 나가봤다. 밤새워 일해봤다. 거리에서돌 던져봤다. 그런 일들 아닌가. - P297

회원 등급제 도입은 이 같은 문제점을 방지하고 사이트를 개설초기 모습으로 다시 되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만 회원 등급 부여는 다른 회원들이 게시물에 매긴 점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뤄지도록 해 운영자의 독단이 개입되는 일이 없도록 할 방침입니다.
많은 회원이 정치 게시판과 문화 게시판 등을 새로 개설해줄 것을 요청하고 계시지만 이는 사이트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 같은 주제를 모두 다룰수 있는 ‘잡담 게시판‘을 하나 둘 생각입니다.
사이트 개편은 이달 말에 들어가 5월 중 완료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편 중에도 기존 메뉴들은 예전처럼 이용할 수 있으나 최종 작업을 마칠 때까지 접속이 다소 불안정할 수 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정상화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P3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