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갈리의 남자 교도소에선 그곳 관리를 맡고있는 대위와 부관들의 안내를 받으며 곡예단과 합창단, 정찰대, 만화책을읽고 있는 세 남자를 지나쳤다. 대위가 앞장서서 짧은 지휘봉을 휘두르며서로 엉긴 채 엎치락덮치락하는 죄수들을 뚫고 길을 열었다. 그러면서 대위는 계속 이렇게 소리쳤다. "미국에서 온 기자님이시다." 그러면 서로엉겨 있던 죄수들은 우리 발치에 쭈그리고 앉아 기계적으로 박수를 치며절하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 제노사이드의 이유를설명할 때 종종 언급되는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그 유명한 군중 심리)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르완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위계질서는 교도소 울타리 뒤에서도 볼수 있었다. 지식인, 공무원, 전문 직업인, 성직자, 상인은 불편하나마 그래도 감방을 차지했지만 농부와 노동자들은 지붕도 없이 뻥 뚫린 마당에나와 앙상한 몸을 서로 기댄 채 쭈그리고 앉아 지내며 질문이 생길 때마다 지도자의 의견을 구했다. 그들은 어째서 그런 상황을 참았을까? 어째서 폭동이라도 일으키지 않았을까? 경비 체계가 그렇게 허술한데도 어째서 르완다에서는 탈출 기도가 거의 없었을까? 5,000명의 죄수가 들고일어나면 키갈리 중앙 교도소의 담을 무너뜨리고 수도를 위험에 빠뜨려 그들이 불신하는 정부에 큰 위기를 야기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고, 지원만 제대로 받는다면 전면적인 봉기에 불을 댕길 수도 있었다. 아무도죄수들의 복종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그들이 살아 있다는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르완다 애국전선이자신들을 가만둘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던 상황에서 오히려 국제 구호 단체 관계자와 기자와 외교관들이 찾아왔으니 꿈만 같지 않았겠는가. - P299

르완다의 지명 수배자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던 곳은 자이르와 케냐였다. 부패로 악명이 높던 그 두 나라의 대통령 모부투 세세 세코와 다니엘 모이는 하비아리마나의 절친한 친구로 그의 미망인 아가트 여사를 극진히 대접했다. 특히 모부투는 하비아리마나가 살아 있을 때 그를 ‘막내동생‘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그의 유해는 아무도 모르게 집단 탈주자들틈에 섞여 국경을 넘어 고마로 운반된 뒤 모부투의 사유지에 있는 묘지에묻혔다. 유엔이 르완다에 파견한 검사팀 책임자였던 마다가스카르 출신의 오노레 라코토마나나에게 자이르나 케냐 사람을 기소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두 나라 모두 국제 조약 가맹국들입니다." 하지만 1997년 해임되기 전까지 거의 2년 동안 라코토마나나는자이르 조사관을 파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 1995년 10월 케냐 대통령 모이는 유엔 재판소를 ‘날치기 기구‘ 라고 매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소환장을 가지고 케냐에 들어와우리 국민들을 데려가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만약 그들이 이곳에온다면 모두 체포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킬 것이다. 누구든우리를 괴롭힌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카가메는 아프리카 독재자들이 인맥을 형성해 서로를 보호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프리카 형제들한테도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산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바로 자기네 나라에서도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확신하건대, 그런 일이 일어나면그들은 우리 땅으로 도망쳐 올 것입니다. 당장 내일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이미 일어났고, 또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 P312

하지만 불명예를 안고 쫓겨났어도 신디쿠브와보는 후투 파워 권력층에게 희생양으로서 여전히 쓸모가 있었다. 고마 서쪽 10마일 지점의 키부호 북단에 계속 사령부를 두고 있던 전 르완다 정부군 지도자들은 시간이지나자 망명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정치 전선 조직을 속속 만들었다. 조직의 수뇌부는 세상에 ‘깨끗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제노사이드와 관련이 없다고 알려진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런 조직 가운데 르완다민주공화당이 가장 눈에 띄었다. 르완다 민주공화당은 난민 위기를 애국전선 탓으로 돌리면서 귀환의 선결 조건으로 전면 사면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선전 전략에 힘입어 르완다 민주공화당은 구호 단체와 언론관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유엔 난민기구 직원들은 난민촌을 방문할 때마다 일부러 르완다 민주공화당 지도자들을 내게 소개하곤 했다. 나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신디쿠브와보와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도 인도주의 단체들은 그들이 사려 깊고 정당하며 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BBC는 자이르, 케냐, 브뤼셀에서 활동하는 르완다 민주공화당 대변인들을 ‘난민의 대표자라고 보도했다. 르완다 민주공화당이 제노사이드 주동자들과 연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실은 그랬다. 고마의 전르완다 정부군 사령부가 조종하는 그림자 후투 파워 정권과 르완다 민주공화당 요원들은 자이르의 난민촌을 완전히 장악한 채 가구 단위로 매달 현금 또는 배급받은 구호식량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협박했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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