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가벼운 우울증에도 완전히 무능력자가 되는 반면어떤 이들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물질 남용에 대해 연구하는 데이비드 맥다월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들이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덜 고통스러워서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음은 런던대학교 아동심리학자 데버러 크리스티의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자살이나 고통, 슬픔의 척도는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픈지, 어떤 증세들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가 없지요. 그저 환자의 말을 들어 주고 그들이느끼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뿐입니다." 질환과 성격은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어떤 환자들은 심각한 증세들도 잘 견디고, 어떤 환자들은 거의 아무것도 견디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에 무릎을 꿇고, 어떤 이들은 그것과 맞서 싸운다. 우울증은 심각하게 의욕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견디려면 상당한 생존 욕구가 필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유머 감각이 회복의 가장 강력한 척도이며, 그것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가장 강력한 척도이기도 하다.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 - P707

인간의 표준이 곧 현실은 아니다. 우울증을 완화시키고 결국슬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물들과 치료법들의 발전은 무엇을의미할까? 진화심리학자 랜돌프 네스의 말을 들어 보자. 이제 우리는 많은 신체적 고통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겪는 신체적고통 중에서 과연 어느 정도가 진짜로 필요한 것일까? 5퍼센트 정도? 상해에 대한 경보 역할을 하는 통증은 필요하지만 지속적인 통증은 꼭 필요한 것일까? 만성적인 류머티즘성 관절염이나 대장염, 편두통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물어보라!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심리적 고통 중에서 진짜 필요한 건 과연 어느 정도일까? 5퍼센트 이상?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 알약을 먹고 고통스러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떨까?" 프랑스인 정신의학자 쥘리아 크리스테바는 우울증의 심층적인 심리학적 기능을 밝혀냈다. "우리를 압도하고 마비시키는 슬픔은 광기에 대한 방패 노릇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조다 더 많이 슬픔에 의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 P716

우울증의 최악의 상태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외로움이며 나는 그 체험을 통해 친밀감이라는 가치를 배웠다. 어머니도 암투병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두 눈물이 날 정도로 잘해 주지만 내게 적대적으로 변한 이 몸뚱이 속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도 끔찍하구나."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변한 정신 속에 홀로 있는 것도 끔찍한 일이다. 당신은 그런 덫에 걸려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해 줄 수있겠는가? 사랑만으로는 우울증의 덫에서 끌어낼 수 없다(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는 있겠지만). 용케 그가 있는 곳에 함께 있어 줄 수는 있지만 타인의 정신의 암흑 속에 꼼짝않고 앉아 있는 것은 (밖에서 지켜보는 것보다는 낫더라도) 유쾌한 일이 아니다. 당신은 멀리서 속을 태울 수도 있고 그에게 다가갈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그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침묵을 지키는 것일수도 있으며 심지어 냉담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외부인인 당신이 임의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야 할 문제다. 우울증은 그 무엇보다 외로운 것이지만 외로움의 반대 되는 것을 길러 낼수 있다. 나는 우울증으로 인해 더 사랑하고 사랑받게 되었으며, 이책을 위해 내가 인터뷰한 많은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린 친구나 친척을 위해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 물으면 나는 그의 고립감을 덜어 주라고 말한다. 함께 차를 마셔도 좋고 긴 대화를 나누어도 좋고, 말없이 곁에 앉아 있어도 좋다. 기꺼운 마음으로 상황에 맞는 방법을 택하면 된다. - P719

우울증이 사라지는 행복한 날이 도래하면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 만일 지구의 생명체들이 비가 내리지 않아도 살 수있다면, 만일 우리가 기상 현상을 정복하여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게 만든다면 구름 낀 날들과 여름의 폭풍우를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몇 개월 동안 음울한 날씨가 이어지는 영국에서 드물게 보는태양은 적도 지방의 태양보다 맑고 눈부시며, 내가 최근에 느끼는행복 또한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만큼 강렬하다. 나는 묘하게도나의 우울증을 사랑한다. 우울증 체험은 좋아하지 않지만 우울증 그 자체는 사랑한다. 나는 우울증이 지나간 뒤의 나를 사랑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둔하고 무딘 만큼 만족을 느낀다. " 테네시 윌리엄스도 행복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하자 "무감각"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지옥을 체험하고 살아남았기에 다시 지옥에 가게 되더라도 살아남을수 있을 것임을 안다. 나는 좀 이상한 방식으로이기는 하지만)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만큼 자신감에 차 있다. 그것으로도 우울증은 거의 완전히는 아니지만) 가치를 지닌다. 나는 다시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이 터지거나 내가 탄 비행기가 사막에 추락한다 해도 쉽게 목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무래도 나의 삶과 나는 서로 반대 입장에서 서로를 증오하며 서로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하면서도 영원히 결합되어 있는 듯하다.
우울증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며, 이 글을 쓰고 있는나의 삶은 슬플 때조차 생기에 차 있다. 어쩌면 내년쯤 나는 다시 무너질 수도 있으며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7년 전 지옥이 기습적으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나의 일부분, 영혼이라고 불러야 할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멋진 발견이었다. 나는 거의 날마다 순간적인 절망감을 맛보며,
늘 다시 무너지기 시작한 건 아닌지 걱정한다. 그리고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간담이 서늘한 충동들에 젖는다. 차에 치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뀔 때까지 이름악물고 참고 서 있어야 하고, 손목을 긋거나 입에 권총을 물거나 영원히 깨지 않는 잠에 빠져드는 상상을 한다. 나는 그런 감정들이 지긋지긋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삶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살아야 할 이유들을 발견하고 그 이유들에 매달리게 되었음을 안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한탄하지는 않는다. 나는 날마다 (가끔은 투계처럼 용감하게, 가끔은 그 순간의 논리에 반하여) 살아 있기로 선택한다. 그것이야말로 드문 기쁨이 아닐까?  - P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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