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어느 날 나는 멀티플렉스에서 영화 보고 아래층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드러그 스토어에서 생리대를 샀는데, 알고 보니 그게 모두 같은 재벌 기업의 브랜드였다. 발길 닿는 대로 욕구를 따르는 일이 큰 것의 배를 불리고 작은 것을 소멸시키는 순환 고리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오싹한 일이다. 소비자 정체성으로 포인트 적립하다가 하루를 보내게 만드는 자본의 천국은 얼마나 무서운가. 내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글로 적어 두기. 이 세계의 무자비한 힘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태어난것을 덜 후회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 P121

『금요일엔 돌아오렴도 비슷한 무게로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인터뷰한 책인데, 여기에는 끔찍한 집단적 죽음이 있고서야 성적과 무관하게 비로소 존재 그 자체로평등하게 주목받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 아이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고 꿈이 뭐였고 어떤 친구와 놀았고 집에 오면 어떻게 했는지 소소한 일상을 부모들은 하나하나 복기한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있는 줄 몰랐다"라고 말한다. 이런 할매가 있다. 이런 아이들이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묵직하다. 잘 들어 가지런히 정리된 한 사람의 기록은 삶에 대한 찬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 하나하나 붙들고 써내면 비로소 보이는것들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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