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라뇨?"
정할 자세를 취했다.
"왜 눈을 가리고 물건을 만져서 뭔지 알아맞히는 게임 있잖습니까?
물건을 상자나 천으로 덮어씌우기도 하고."
이사카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는 끄덕였다. "아하, 알아요. 그런게 있죠. 삶은 문어나 우무나 작은 동물을 놓고 하는 거 말이죠?"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눈을 가리면 뭘 만지든 섬뜩하게 마련이죠.
그래서 다들 야단법석을 떨잖아요."
"히사에도 송년회 자리에서 그 게임을 한번 해본 적 있어요. 뭘 만졌는지 아세요? 주판이었답니다. 그런데 마치 외게인한테 공격이라도 당한양 소리를 질러대서•••••. 이사카가 머리를 흔들며 웃더니 눈가를 훔쳐냈다. 새삼 떠올리니 어지간히 우스운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왜요?"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면서도 눈가에 여전히 웃음이 남아 있었다.
혼마도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가 지금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도 눈을 가렸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다시 말해 아직 상황을 잘 몰라서죠. 소란은 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뚜껑을 열어보면 주판이 나올지도 모르죠. 다만, 지금 단계의 감촉이••••• 영 좋질 않아요." - P95
이곳으로 갓 이사 왔을 무렵, 갓난아기인 사토루를 안고 미즈모토공원을 산책하다가 길가에 떨어진 긴 끈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건너뛰어 넘어갔는데,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끈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길가에 쌓인 낙엽 더미 사이로 막사라지려는 참이었다. 야윈 뱀이었는지 거대한 지렁이였는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현실에서는 그런 일도 있게 마련이다. 멍하니 지나치면서 왠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이 실은 엄청난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초점이 맞는 순간에야 알아차리게 된다.
"너무 깊이 파고드는 건지도 모르지만......" 히사에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가요?"
"이 호적등본을 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구리사카가즈야 씨의 약혼자는 단순히 ‘세키네 쇼코‘라는 사람의 호적을 이용한 것만이아니라, 그걸 모조리 자기 걸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생각......"
"굳이 분가까지 했으니까요?"
혼마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가 사실에 어렴풋이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던 것이다.
"네, 그리고 부모란의 이 ‘사망‘이라는 글씨도 그래요. 이건 신고자의 희망이 없으면 굳이 붙이지 않거든요."
이사카가 "허어, 그래?"라며 놀랐다.
"우리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셔서 잘 알아요. 사망신고서를 내면 담당자가 물어요. 호적 부모란에 ‘사망‘ 표기를 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라고."
혼마는 슬쩍 이사카를 쳐다보았다. 섬뜩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며호적등본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데 굳이 표기했다는 건•••••• 뭔가 주장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이 호적에는 나 혼자라는 주장. 아니면 설령 서류상일지라도 남의 부모 이름을 같이 올리는 게 싫어서 적어도 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었거나••••• 좀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그런 생각 안들어?" 히사에가 쳐다보며 묻자 이사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마는 다시 한번 나란히 늘어선 ‘사망‘이라는 글씨를 내려다보았다. 히사에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결코 지나친 생각이 아니다.
타인의 호적. 타인의 부모 타인의 신분.
돈으로 샀을까. 아니면•••••
"어떤 방법을 써서 가로챘을까. -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