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순사인 모리다는 밤마다 야간 당직에 들어왔고 여러차례 깊은 대화를 나눈 두 젊은이는 서로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느날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고 나서 이재유는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말처럼 던져보았다.
"나는 밖에 나가고 싶소. 옳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소."
모리다의 얼굴에서 일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러고는 진지한말투로 대답했다.
"밖에서는 활짝 피어 있던 벚꽃도 이곳에만 들어오면 시들어버립니다. 그러나 시들지 않고 피어나는 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친구가 가버리면 외로워지겠지요. 그렇지만 소란을 피우지는않을 겁니다. 차 한잔이 식을 때까지는." - P342

미야케가 검거된 후 그의 아내 히데는 경성제대를 나온 제자들의 도움으로 병목정에서 고서점을 열었다. 그러다가 조선인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명치정에서 ‘거북의 집, 가메야‘라는 고서점을 개업하여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였다. 출옥 후 미야케는 아내가 열었던 고서점을 정리하고 1937년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부인 히데와함께 일본에 돌아간 그는 다시는 대학에 복직할 수 없었고, 산기슭에서 버섯을 재배하며 살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야 교직에 복귀했다. 그는 여든두살의 나이로 죽기 일년 전까지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생전에 그가 소장하고 있던 장서는 센다이의 동북대학에 ‘미야케 문고‘라는 이름으로 기증하여 보관되었다. - P349

또한 신금이 눈에는 역귀도 보였다고 한다. 지산이와 장산이가 나란히 고뿔이 들어 열 내고 기침도 하기 전이었는데 버드나무집 동네 골목에서 신금이가 고년을보았다고 한다. 황혼 무렵이라 서향의 골목은 안쪽이 어둡고 바깥쪽으로는 햇빛이 곧추 들어와 눈이 부셨다. 신금이가 장 보러 나가려고 대문을 나서는데 작은 계집아이가 집 앞에 서 있었다. 고것은양 갈래 땋은 머리에 노랑저고리 다홍치마를 입고서 마치 사방치기라도 하듯이 깨금발을 뛰면서 놀고 있었다.
"요년, 왜 남의 집 앞에서 방정맞게 뛰어다녀?"
신금이가 날카롭게 중얼거리자 계집아이는 놀랐는지 동작을 멈추고 오뚝 섰다.
"아주머니 내가 보여요?"
"그럼, 보이다마다. 니까짓 게 우리 집을 노리는 모양인데 시루속에 갇히고 싶으냐?"
계집아이가 혀를 낼름 내밀어 보이고는 달아나면서 종알거렸다.
"홍, 벌써 들러서 나왔지."
그 소리를 듣고 신금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낮잠이 든 사이에 고년이 집 안에 들어왔다가 나온 모양이었다. 계집아이는 치맛자락을 팔랑거리며 역광이 비낀 골목 안을 이 집 저 집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신금이는 무당이나 점쟁이 판수를 찾아다닐 정도는 아닌 개화 여성이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장산이가 숨을 거둔아침에 신금이는 대문간 쪽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바가지에 냉수를떠다가 고춧가루를 타서는 문 앞에 이리저리 뿌렸다.
"예끼 이 고얀년, 썩 물러가거라!" - P3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