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 리베카 솔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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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우슈비츠의 시간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글을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글을 써야 할 동기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학생 때 내 이탈리아어 성적은 보통이었고 역사 성적은 형편없었다. 내가 특별히 흥미를 느낀 과목은 물리와 화학이었다. 그래서 나는 화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글을 쓰는 세계와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직업이었다. 수용소의 경험이 나로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자신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어느 화학자가 죽음의 수용소를 통과하고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 강렬했다. 무엇이 한 사람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할까. 그것이 항상 알고 싶었다. 글쓰기에 관한 열쇠를 하나 찾아낸 것 같아 반가웠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일은 지겹고 괴로운 반복 노동인데 그 고통을 감내할 만한 동력이 자기에게 있는가. 재능이 있나 없나 묻기보다 나는 왜 쓰(고자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여긴다. 프리모 레비는 동기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피로 물든 수용소의 기억을 일일이 들춰내고 복기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그러나 그 무참한 죽음과 끝 모를 수치가 몸속에 쌓여 있다면 또 어떻게 살아갈 수있었을까 싶다. - P74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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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용기다‘라는 명제를 처음 봤을 때 곧장 와 닿지 않았다. 문학은 언어 예술이고 용기는 굳센 기운인데 무슨 상관이있지 했다. 꾸준히 글을 읽고 쓰면서 그 깊은 의미를 알아챘다.
좋은 글에는 금기와 위반이 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드러내고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밝혀낸다. 작가의 용기에 탄복하고 작가의 용기에 전염된다.
어쩌면 용기란 몰락할 수 있는 용기다.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남에게 보여 주는 용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는 용기.... 도돌이표처럼 용기 구간을 왕복하는 일이 글쓰기 같다. 오죽하면 이성복 시인이 말했을까.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키는 거예요."
처음엔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남들 앞에 내놓는 일이 쑥스러워 몸이 굽었다. 그래도 굽은 몸으로 꾸준히 쓰고 의견을 냈다. 안 쓰고 안 부끄러운 것보다 쓰고 부끄러운 편을 택했다. 부끄러움 총량의 법칙이 있는지, 왕창 부끄럽고 나면 한결 후련했다. 부끄러워야만 생각하므로 부끄럽기로 자처한 측면도 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자기 인식이야말로 쾌감 중 으뜸임을알았다. - P76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에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
- 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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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해 동안 글을 모르고 살았다." 한 남자 학인이 발표한 글의 첫 문장이다. 난 또 움찔했다. 그는 때밀이, 막노동꾼, 공장노동자, 모텔 종업원을 전전하다가 "직업을 당당하게 말하고 싶어서" 중장비 기술 자격증을 15개나 따고, 독해력을 높이고자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며 이렇게 썼다.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는 줄 알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 능력이 좋아졌다. 내가 바라는 것은 똑똑한 인간이 되는 건데 참 이상했다." 이어 고백한다. "글을 몰랐을 때는 항상 움츠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도 없었고 자신감 없이 살았다. 글을 배우면서 내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고 인간으로서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 이곳 수업에서 난 ‘평생‘ 학습의 본디 뜻을 배웠다. 어떤 이들은 평생 배우고 쓴다지만 특정한 서사를 주어진 틀 안에서 되풀이하고, 어떤 이들은 뒤늦게 배우고 쓰면서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기죽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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