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철은 못내 궁금하던 점을 물었다.
"독립운동과 계급운동은 다른 일인가요?"
"나에게도 그게 항상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두개의 무거운 철쇄에 묶여 있어요. 일제의 식민 억압과 부르주아 사회체제입니다. 근로대중의 투쟁을 불러일으키고 일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그 두 과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독서회의 구성원에 대하여도 토론했고 다른 공장과의 연락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접촉은 범위와 인원을 최소화하고 각 일터의 사정에 맡겨서 사업을 해나가야겠죠. 이동무가 했던 방식으로 다른 일터에서도 점차적으로 조직 범위를 넓혀가면 되겠군요."
그날 이철이 뇌리에 새긴 것은 서두르지 말되 급변하는 상황을 놓쳐서도 안 된다는 것과 노동대중의 자율성과 지도력을 신뢰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활동가는 대중을 도우면서 끊임없이 대중의 지도를 받는 존재라야 했다. - P154
"코민테른을 비롯한 국제 혁명조직은 식민지 조선의 운동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방침을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했어요. 코민테른 극동부에서 파견되었다는 인사,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받았다는 인사, 프로핀테른 극동부에서 파견 나왔으며 국제당의 레포 회의에 참가했다는 인사, 국제공산청년동맹 동양부니중국공산당 만주성회니 태평양노동조합의 파견원이니, 그리고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이라는 무수한 인사가 있었지요. 이들은 일제의 압박 속에서 꿈틀거리며 살아가려고 일어서는 조선의 근로대중을 놓고 서로 자기 조직이라면서 운동선을 중복시키고 주도권다툼을 해왔지요. 이런 사람들이 밖에서 배웠던 조선에 대한 지식은 국내에 들어와 운동하는 데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