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여러 사람이 글로 쓴 구체적 일상, 내밀한 고백, 치열한 물음을 읽고 말하고 곱씹으며 나도 모르게 불안증이 가셨다. 성적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아서 안도한다는 게 아니라, 삶은 성적이나 취직 같은 한두 가지 변수로 좋아지거나 나빠질 만큼 단순하거나 만만하지 않다는 것, 부단한 사건의 이행 과정이지 고정된 문서의 취득 수집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 P37
내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나, 타자로서의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아니다. - 황현산 ••••••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는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 P50
‘내용만 진실하다면 소재는 무엇이라도 좋다.‘ 이 대목에서내 얼굴도 덩달아 환해졌다. 어떤 것이 글감이 되고 어떤 것이 글감이 되지 않는가. 처음엔 선별의 문제로 접근했다. 작가라는 자의식도 없던 때, 글이 쓰고 싶어서 무작정 글을 쓰고는 너무유치한 거 아닌가 검열하곤 했다. 딸아이가 키우는 새우젓만 한물고기 구피 이야기, 성남 모란시장 음식점에서 본 취객 이야기같은 글감이 그랬다. 그 왜소하고 볼품없는 것들이 사유를 자극하고 생각의 갈래를 피워 올렸고 그래서 나는 썼지만, 정치와 사회와 역사의 거대 담론 사이에서 어쩐지 위축되곤 했다. 그런데 그 글을 웹진 ‘위클리 수유너머‘에 연재했을 때 독자들은 내가 본 것, 느낀 것에 조용히 공감해 주었다. 그 일로 용기를 얻었다. 영 아닌 소재는 없구나. 소재 찾기보다 의미 찾기로구나.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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