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중독성 물질 남용은 하나의 순환을 이룬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중독성물질을 남용하게 되고, 물질 남용자는 삶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그결과 우울증에 걸린다. 그렇다면 ‘유전적으로‘ 알코올중독 성향을지닌 사람들이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그 결과로 우울증을 겪게 되는것일까, 아니면 ‘유전적으로‘ 우울증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자가 치료의 형태로 술을 마시는 것일까? 둘 다 맞다. 세로토닌 수치의 저하는 알코올중독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우울증이 악화되면 알코올중독도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역의 관계도 성립된다. (즉 알코올 섭취가 늘면 세로토닌 수치가 떨어진다.) 금지된약물을 이용한 자가 치료는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합법적인 항우울제는 부작용을 먼저 보이고 점차 약효를 나타내는 데 반해, 중독성 물질은 대개 약효를 먼저 보이고 점차 부작용을 나타낸다. 코카인 대신 프로작을 복용하는 것은 늦게라도 바람직한 효과를 보려 함이며, 항우울제 대신 코카인을 선택하는 것은 즉각적인 만족을 갈망하는 것이다. - P355
중독 문제와 우울증을 함께 안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두 질환이 동시에 진행되며 각각의 질환이 치료를 요하고 나머지것을 악화시킨다. 이 질환들은 도파민계 내에서 상호작용한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전에 중독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대중적인 생각은 터무니없다. 그것은 자신의 불행을 꾹꾹 눌러 두고 있는 이에게 그 불행이 한껏 피어나도록 방치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반면 기분이좋아지면 더 이상 중독성 물질을 찾지 않을 것이므로 중독은 그대로 방치하고 우선 우울증을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은 육체적, 정신적 의존성이라는 현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미국 마약단속국 부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컬럼비아대학교 중독 및 물질 남용 센터 책임자로 있는 허버트 클레버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중독 분야에 대해 배운 것이 있다면, 일단 중독이 되면 어떻게 중독이 되었는지는중요하지 않으며 자체의 생명력을 지닌 질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코올중독이면서 우울증인 환자를 항우울제로 치료하면 우울증이 아닌 알코올중독자가 되는 거죠." 물질 남용의 원천적인 동기를 제거한다 해서 물질 남용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 P360
절제가 최고의 치료법이기 때문에 물질 남용자에게 항우울제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청교도적 견해는 사디스트적인 것이다. 우울증이 알코올중독의 주된 동기인 ‘우울증 알코올중독자‘의 경우 항우울제가 술에 대한 욕망을 경감시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먼저 우울증을 완화시키는 방식의 시도가 중독성 물질부터 끊는 시도보다 관대한 것이다. 알코올중독자에게 SSRI 계열의 항우울제를 투여하면 알코올을 끊기가 더 쉬워진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보더라도 항우울제가 물질 남용에 효과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분명 우울증은 정신역동적 치료에 의해 크게 완화될 수 있으며, 단순히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간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우울증 알코올중독자‘들은 끔찍한 고립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으며 그런 고립감을 없애 주면 우울 증세들이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 - P360
지금까지 가장 흔한 중독 물질은 카페인과 니코틴이다. 중독 전문가인 한의사가 내게 토로하기를, 해외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이틀 연속 꼼짝도 못 할 정도의 숙취와 끔찍하게 우울한 기분에 시달렸으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에 허브 차밖에 없어서 카페인 금단현상을 겪은 것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진한 커피몇 잔을 마시자 거뜬해졌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는데 커피는 단순히 후천적인 취향이 아니었어요. 그건 중독이고 마시지 않으면 금단현상을 겪게 되지요." 우리 사회는 무능력 상태를 초래하지 않는 중독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특정 중독 물질들에 대해서는 가끔 사용하는 것조차 막고 있다. 마리화나 사용의 합법화와 담배의 불법화에 대한 논쟁은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의견불일치를 보여 준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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