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가지 선물은 자살하신 할머니 사진이었어요. 나는 그 선물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어요. 할머니는 아름다우셨어요. 시선을 내리깐 옆모습이었죠. 삼십대 초반의 모습일 거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흑백사진이었는데 아버지께서는 그 사진을 연푸른색 대지에 붙이고 은색액자에 끼워 내게 선물하신 거지요. 어머니께서 내가 앉아 있는 의자로 다가오시더니 왜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 때문에 우느냐고 하셨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할머니는 나와 같은 병을 앓으셨어요.‘ 난 지금도 울고 있어요. 슬퍼서가 아니라 감격해서 나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수술 덕분에 살고 있는 거니까. 부모님과 의사들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우리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어요. 항상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지만요." - P271
만일 인간 게놈이 3만 개가량의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면(점점 더 많은 유전자들이 발견되면서 이 수치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각 유전자마다 열 가지 정도의 중요한 변이들이 있다면 질병에 대한 유전적인 취약성을 유발하는 후보자 수는 100,000 개가된다. 일부 유전자를 밝혀내는 시점에서 그 유전자들이 상이한 환경적 자극들에 대하여 상이한 단계들에서 상이한 조합들을 이룰 때 어떤 상이한 결과들을 내는지 모두 밝혀내는 시점까지는 얼마나 먼길일까? 모든 조합의 가능성들을 확인하려면 무지막지한 분량의 작업이 요구된다. 그리고 다양한 외부 상황들에 적용해 보는 절차도 필요하다. 컴퓨터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이 모든 것을 밝혀내려면 아직 요원하다. 인간의 모든 질병들 중에서 우울증은 지나치게 속단된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나는 유전학자는 아니지만 우울장애를 유발하는 유전자 수는 최소한 수백을 넘으리라 확신한다. 그런 유전자들이 외부 자극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울증을 유발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우리 몸에 유익한 기능들도 수행할 것이므로 파괴해 버린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겪게 될 것이다. 유전자 정보가 특정한 종류의 우울증을 통제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하겠지만 유전자 조작을 통한 우울증의 근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 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