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인터넷지도가 디지털 기술의 산물이라는 이유로 종이지도보다 ‘항상‘ 정확하다는, 다소 맹목적인 편견이 일반인들에게 퍼져 있는 듯하다. 일종의 ‘디지털 정보 맹신주의‘라고 할 수있다.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 홍수 시대의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안에 있으므로 이제 종이로 된 자료의 시대는 끝났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한다. 인터넷지도가 그 정보 자체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그 파급력이 더욱 막강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정확성을 담보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깊이 따져 보아야 한다. 저널리즘 학자 메레디스 브루사드는 인터넷 기술과 정보에대한 맹신을 ‘기술쇼비니즘technochauvinism‘이라고 불렀다.‘ ‘기술쇼비니즘 시대에 종이지도는 과연 과거의 유물로 사라질 것인가‘라는 물음에 그녀는 종이지도가 독특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살아남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인지연구가들은 얕은 지식과 깊은 지식을 구분한다. 편안한 여행을 추구하는 여행자는 길 찾기 정도의 얕은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깊은 지식이 앎의 유희를 높여 줌으로써 여행을 좀 더 풍요롭게 해주기도 한다. 이때 지도는 여행의 목적지 간 이동에 도움을 주는 얕은 지식을 전하는 나침반이면서 동시에 목적지 간의 맥락을 파악하게 해주는 깊은 지식이자 지리적 상상력의 보고가 된다.
우리는 특정한 대상의 시각 정보를 인지지도로 새겨넣을 때,그 대상을 단독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주변에 관한 정보도 연결시켜 수용한다. 카페에서 친구와 만나는 일을 생각해 보라. 좌석과 의자, 진열된 커피와 관련 용품들, 주문대와 바리스타들의 커피 제조 공간, 시원한 통창을 통해 내다보이는바깥 풍경, 독특한 조명과 냄새 등 이 모든 것의 어우러짐 속에나의 좌석이 자리 잡고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의 현재 위치를 주변 경관의 어우러짐 속에서 파악한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지도는 이리저리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의 혼란을 중폭시킬 수 있다. 하지만 종이지도는 큰 지면에 고정된 정보를 담고 있음으로써 오히려 가독성이 높다. 강과 산의 흐름, 도시와 국가의 위치, 교통로 등의 정보만을 담고 있는데도 그 맥락을 훨씬 잘 파악할 수 있다. - P82
전이적 장소는 경계의 안쪽도 아니고 바깥쪽도 아닌, 경계에놓인 장소를 말한다. 공항, 기차역, 항구, 버스터미널처럼 경계안쪽과 경계 너머를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을 하는 장소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통로로서의 장소에서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통과의례를 치른 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흩어져나간다. 이곳을 거치는 모든 여행자는 그동안의 평범하고 익숙한 일상을 출발지에 남겨 놓은 채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곳의일들을 상상한다. 그러한 여행자의 마음은 순례자의 의식과 다를 바 없다. - P87
그때 내 옆에 앉아 우리를 안내하던 연변대 지리학과 학생이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넌지시 말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여기만 오면 아무 소리 안하고 전부 두만강 쪽만 바라본단 말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신기합니다."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마음속 경계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날카롭게 지적하는말이었다. 나는 그에게 두만강은 어떤 곳인지 물어보았다. 그는그저 물놀이하던 재미난 놀이터였으며 가끔 물 건너 북한 땅에가서 놀다 온 적도 있다고 대답했다. 나와 그의 심상지도에 그려진 북한 국경의 의미는 이처럼 달랐다. 나의 북한 국경은 넘어서는 안 되고 넘을 수도 없는 차단막 같았다면 그의 북한 국경은 자연스레 넘나들어도 문제없는 통로 같았다. 이처럼 여행은 전혀 예기치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해준다. 경계 너머를 여행하며 경험하는 ‘나‘밖의 것들이야 당연히 낯설게 다가오겠지만, 그것들을 경험하는 나 자신조차도 낯설게느껴지는 경험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경이롭다. 내 자신이 낯선존재로서 새롭게 다가오게 되고, 그 속에서 나도 모르던 내 가치와 능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P95
사실 한 도시의 역사에 대해 깊이 알자면 도서관에서 며칠동안 책을 읽는 것이 더 낫다. 하지만 책으로는 그곳을 ‘알‘ 수는 있지만 ‘느낄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의 얼굴을 아는것과 친구가 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듯이, 그 도시의 정보를아는 것과, 사람들과 교류하고 땅과 자연이 내뿜는 기운을온몸으로 느끼며 체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먹고 자고 이동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헬리콥터를 타고 히말라야에 오르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더위와 바람과 추위를 모두 견디며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체험해야만 인생에 무언가를 남기는 여행을 할 수가 있다. _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 P110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지도를 살펴봐야 한다. 장소와 경관 하나하나는 일종의 숲속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생물과 무생물 같은 개별적인 요소들이다. 이것들은 결코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상호밀접한 연관 속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따라서 구성 요소들각각을 제대로 경험하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들이 속해 있는 전체 숲의 특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2차원 평면 위에 개념화되고 기호화되어 있는 지도는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 전체를 조망하라고 말해 주고싶다. 마치 숲 밖에서 숲 전체를 바라보듯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여행지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장소와 경관이처한 맥락을 파악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개별적인 장소와 경관들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준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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