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고 손실된 수만년 전 화석에서 30억 쌍 게놈 전체를 추출해 해독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대단히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2010년 5월, 페보 연구팀은 결국 최초로 네안데르탈인 게놈 초안을 모두 해독하는 데 성공했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문을 통해 결과를 공개했다.
논문 제목은 건조하게 ‘네안데르탈인 게놈 해독 초안‘이었다. 하지만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단에서 내놓은 보도자료 제목은 좀 더 사람들의 관심사를 겨냥했다. ‘우리 안의 네안데르탈인‘이었다. 논문에서 연구팀은 단순히 게놈 해독 결과만 제시하지 않고, 유전자의 특성을 현생인류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현생인류의 게놈에 있는 유전자의 일부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왔음을 확인했다. 현생인류가 수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뒤 일부가 유라시아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만나 피를 섞었으며, 그 결과 현재에도 최초 발상지에 살았던 아프리카인 일부를 제외한 전 세계인의 유전체에 약 2%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10여 년 전 페보 자신이내놨던 연구 결과를 정반대로 뒤집는 내용이었다.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발견이 이뤄지면 이를 수용하고 더 정확한 정보로 갱신하는 일은 과학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페보 역시 그 경로를 따랐다. 새로운 결과는 대단히 충격적이었지만, 아무도 왜 결과가 다르냐고 되묻지 않았고 과거 연구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기술과 증거로 밝혀낸 새로운 진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수긍했다. 페보는 이후에도 또 다른 친척 인류 데니소바인의 게놈을 최초로 해독하고 이들과 현생인류와의 관계를 밝히는 등 고게놈 분야를게놈 및 진화 연구의 중요한 축으로 올려놨다. 지금은 다른 친척 인류는 물론, 역사시대 현생인류의 인구집단 이동 역사를 파악하는 연구에도 고게놈해독 기술이 널리 쓰이고 있다. 페보는 이런 공로로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