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는 K시 한 파출소의 의자에 앉아 보호자를 기다렸다.
공사장 숙소에서 나와 서둘러 뛰다가 오토바이 배달 기사와 부딪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을 치른 뒤였다. 경찰은 지우에게 부모의 연락처를 물었다. 지우는 ‘엄마는 최근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오래전 소식이 끊겼다‘고 했다. 경찰이 혹시 다른 어른은 없는지 묻자 지우는 할 수 없이 선호 아저씨에게 연락했다. 그러곤 유리문 밖, 바람에 휘청이는 2월의 겨울나무를 바라보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 P7

지우는 잠자코 그 소리에 집중했다.
-신은 밤을 만들었어요. 그러곤 뭔가 허전해 고민하다 자신의 엄지 끝에 침을 묻혔습니다. 그런 뒤 그 엄지로 하늘한 곳을 문질렀어요. 그러자 마침내 그 안에서………-안에서?
지우에게 응답하듯 저쪽에서 밝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빛이 새어나왔습니다.

당시 피로와 허무에 절어 살던 지연도 이 대목을 읽을 때만큼은 힘을 주어 연극적인 효과를 냈다. 그러곤 어린 지우의 눈썹에 엄지를 댄 뒤 장난치듯 꾹 눌러댔다. "빛이 나왔습니다" 하고. "낮이 생겼습니다" 하고. 그래서 지우는 훌쩍자란 후에도 학교 운동장에 땅거미가 질 때면, 지겨움과 무서울이 분간되지 않고 최근 세상을 떠난 엄마가 몹시 그리워질 때면, 저도 모르게 한 손으로 제 눈썹을 꾹 눌러보는아이가 되었다. 어느 때는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달래지지않아 스스로 이야기를 짓는 아이가.

이를테면 이런 식의.

옛날 옛날에
세상에 자비도 없고 희망도 없고 노래도 없던 때
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첫날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좋아서.
그 밤을 덮고 자느라
세상에 인간은 있되
구원도 없고 기적도 없고 선의도 없다는 걸 잊었습니다.
첫날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좋아서.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편해서. - P11

-너희는 이미 해봐서 알지?
아이들이 활달한 듯 무성의한 "네" 소리를 냈다.
-규칙은 간단해.
담임이 여유로운 태도로 주위를 둘러봤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면 되는데,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해. 소개가 끝나면 다른 친구들이 어떤 게 거짓인지 알아맞힐 거고. 그럼 나머지 네 개는자연스레 참이 되겠지? 선생님 말 이해했어?
전입생이 난처한 미소를 짓자 담임은 그럴 줄 알았다는듯 노트북을 열고는 허리 숙여 마우스를 딸각였다. 곧이어칠판 옆 대형 모니터에 단정한 문구가 떴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 P14

이윽고 집중력을 잃은 아이들이 마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더이상 누군가의 이야기가 참이든 거짓이든 궁금하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소리는 꿈속에서도 큰슬픔과 초조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소리가 깊은 숨을 내쉰 뒤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본다. 
다음순간 교실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동시에 와아아 웃었다. 그래서 소리도 따라 웃었다. 그러다 딱 한 명 웃지 않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바로 그 전입생이었다. - P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