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는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와이라의 두 눈은 아래에서올려다본 숲 천장처럼 크고 짙다. 이제는 천천히 돌아서 뒤쪽 정글을 바라본다. 꼬리가 맥없이 단 아래로 축 늘어졌다. 폭신폭신한 꼬리 끝이 휙휙 움직이기를, 머리 주변에서 날아다니는 모기를 향해불쑥 튀어 오르기를 기다렸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또다시 양발에 머리를 누이고 아까보다 더 작게 웅크린뒤에 눈을 감는다. 와이라의 가슴이 오르내린다. 들릴락말락 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구름이 더욱 자취를 감추고, 공터가 황량한 진회색으로 물든다. 와이라의 숨소리는 점차 느려지고, 잠들었나싶을 때쯤 또 다른 소리에 쉽사리 먹혀버린다. 귀뚜라미의 날갯소리, 나뭇가지의 삐걱거림, 지나치게 우거진 파투후의 우레 같은 바삭거림, 벌레의 웅얼거림은 전부 너무도 시끄럽다. 야자나무가 부딪치는 소리, 새들의 깍깍거리는 불협화음, 수많은 원숭이의 거친 비웃음, 끊임없이 크게 고동치는 나의 심장 박동도. 와이라가 바로 저기에 있다. 와이라를 완전히 잃을까 봐 정말 두렵다. - P272
와이라는 숨 막힐 듯 오랫동안 내 팔을 바라본다. 공기가 서늘해지고, 부풀어 오른 털은 근육을 따라 능선을 이루었다. 퀴퀴한 건초와 대지의 향기가 우리를 휘감는다. 놀람이 새겨진 와이라의 눈동자는 바늘구멍만치 쪼그라들어 황록색 우주 속 검은 별이 되었다. 눈가의 호박색 주름은 여전하다. 코에 새로 생긴 하트 모양 자국은 이유 모를 생채기로 두 동강이 났다. 누가 그랬을까. 가시투성이나뭇가지 혹은 누군가의 발톱이었을까. 결코 알 수 없다. 와이라는절대로 나에게 말해줄 수 없으니까.
"와이라."
숨죽이고 기다린다. 여전히 그르렁 소리의 부드러운 진동이 느껴진다. 두 귀는 미동도 없다. 와이라 역시 숨죽이고 있다.
바로 그때 와이라가 불쑥 고개를 들어 앞으로 기울인다.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아주 섬세한 움직임. 와이라가 시계 분침이라고 치면 12시에서 12시 1분으로 똑딱 움직일 만큼 작은 동작이다. 두 눈이 동그래지고 연한 금빛으로 아주 조금 밝아진 것을 시작으로 얼굴의 긴장이 살짝 풀려간다. 내가 알아차리게 된 신호다. 괜찮다는 신호. 나는 숨을 휘 내쉬고 팔을 더 가까이 댄다. 와이라가 내 팔을핥기 시작한다. 와이라의 혀가 내 살갗을 쓸어 올리는 소리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현기증이 난다. 눈물이 나서 눈을 깜박이며 와이라의 목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댄다. 안도감에 내 갈비뼈가 짓눌렸다가 부풀어 오른다. 날카롭고 아프고 아름다운 혀의 끌어당김. 와이라에게서 석호의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는 부드러운 바람과 흙 냄새가 난다. 와이라는 불신과 기쁨을 안고 더 가까이 몸을 기울여 내게 기댄다. 빠르게 쿵쾅쿵쾅 울리는 와이라의 심장이 느껴진다. 내 심장도 덩달아 뛴다. 우리의 가슴, 우리의 뼈, 우리의 호흡이 맞닿아 있다. 귓등의 흰 솜털을 긁어주자 와이라가 광대뼈를 내 손에 대고 가만히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와이라의 코가 내 손바닥을 누른다. 차갑고 축축하다. 이제 두 앞발을 내 장화 위에 올려놓고 날 가까이 끌어당긴 채 한쪽으로 고개를 젖힌다. - P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