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케인스는 투자라는 것이 본래부터 변덕스럽다는 것을 주장한다. 케인스는 대부분의 투자가 ‘동물적 감각animal spirits‘ 으로 불리는 비이성적인 힘에 이끌려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기업가들과 투기업자들은 투자를 하는 데 있어 객관적인 데이터보다는 자신들의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힘은 일관적이지 않다. 즉,
수많은 무지한 사람들의 대중 심리에서 비롯한 진부하고 상투적인 판단은 뜬금없는 소문에 의해 갑작스럽게 바뀔 수 있다. (...) 시장은 낙관과 비판의 물결에 맞춰 함께 출렁인다. 물론 이것은 얼핏 보편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합리적 계산을 위한 분명한 토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당한 판단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인스는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최고의 기업 분석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떠돌아다니는 소문이나 풍문을 제대로 간파해낼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 가지 재미있는 비유를 통해 전문적인 투자자들을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100점의 인물 사진 작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얼굴 여섯 명을 가려야 하는 신문사 주최의 한 대회가 있다고 하자. 수상은 대회 참가자 전원이 평균적으로 선호하는 얼굴에 가장 부합하거나 근접하는 사진작품을 선택한 사람에게 수여된다. 이때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다. 각각의 경쟁자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고르기보다는 그가 생각하기에 다른 경쟁자들이 가장 선호할 것 같은 사진을 선택한다. 따라서 사실상 모든 참가자들이 같은 관점에서 같은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 P435
우리는 모든 것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불합리한 심리 상태에 의존한다고 (…)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반대로, 장기 기대 상태는 종종 안정되어 있다. (...) 우리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결정이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엄밀한 수학적 기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수학적 계산을 할 수 있는 토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도록 만드는 것은 활동하고자 하는 우리의 타고난 충동이라는 것, 여러 대안 가운데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합리적 자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합리적 자아는 가능한 논리적이고 치밀한 계산을 하지만, 우리의 동기를 일시적인 기분이나 감정 또는 요행에 맡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 P436
이번 장에서는 케인스의 모델을 비판했던 경제학의 한 지적 흐름에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통화주의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케인스의 모델을 비판했다.
첫째, 정부는 대개 훌륭한 운전사가 되지 못한다. 둘째, 경제의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는 재정 정책과는 아무런 관계가없다.
통화주의 monetarism 라 불리는 경제학의 한 지적 조류는 경제가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가속 페달은 ‘화폐의 공급을 늘리는 것 higher money supply‘ 이고, 브레이크는 ‘화폐의 공급을 줄이는 것 lower money supply‘ 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통화주의자들은 누가 운전석에 앉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케인스주의자들과 의견을 달리한다. 케인스주의자들에 따르면, 정부 지출과 조세 정책에 대해 권한을 갖고있는 의회가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통화주의자들은 금융 업계를 관장하는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며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 P443
적정 화폐 공급량 또는 수준이란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생산된 모든 상품을 구매하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 없이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양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문제를 간과한다. 그렇다면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을 위해 유통되어야 하는 통화의 양은 얼마나 되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얼마나 빨리 지출하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수중에 있는 돈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편일까 아니면 바로 써버리는 편일까? 돈은 얼마나 빨리 사람들 손에서 손으로 옮겨 다니고, 경제를 관통하며 유통할까? 만일 화폐가 빨리 움직인다면, 비록 사람들이 화폐를 양말 서랍에 넣어놓고 몇 달 동안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양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많은 경제학자들과 국민 경제가 이런 단순한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 화폐량이 1년 동안 회전하는 비율은 화폐의 유통속도velocity of money라 불린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GDP, 즉 국내총생산 Gross Domestic Product 과 비교하면서 화폐의 소득 유통 속도income velocity of money (이것을 V로 표기한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V는 GDP를 화폐 공급량으로 나눈 것과 같다. 예를 들어, GDP가 36조 달러이고 화폐 공급량이 6,000억 달러라면, V는 60이 된다. 만일 화폐가 1년 동안 6번 회전한다면, 사람들은 현금 또는 당좌예금 형태로 자신의 연간소득 가운데 약 2개월 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관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화폐의 유통 속도는 왜 중요한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그리고 속 시원하게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일 화폐의 유통 속도가 안정적이라면, 그리고 중앙은행이 화폐 공급량을통제할 수 있다면, 정부는 경제의 속도를 높이거나 늦출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갖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은 엔진을 직접 컨트롤하는 ‘화폐 공급량‘을 나타냈다. 반대로 화폐의 유통 속도가 불안정하다면, 즉 사람들이 현금과 당좌 예금 형태로 많은 돈을가지고 있어야 할지 적게 가지고 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한다면, 화폐 공급량을 통제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며, 가속 페달도 제대로 말을 듣지 않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통화주의자들은 화폐의 유통 속도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케인스주의자들은 그것이 불안정하다고 간주한다. 이런 측면에서 통화주의자들이 화폐 공급량을 정부가 운전하는 자동차에서 가장 강력한 페달로 간주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반편 케인스주의자들은 재정 정책을 무엇보다 가장 중요시하며, 통화주의자들의 통화 정책을 자동차의 앞 유리 와이퍼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화폐의 유통 속도가 불안정하다는 것은이미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P447
화폐 공급량과 GDP를 직접 연동하는 변속 메커니즘transmission mechanism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화폐의 유통 속도가 일정하다는 통화주의자들의 가정이 옳다고 전제하자. 만일 FRB가 채권을 구입하는 형식으로 화폐 공급량을 늘린다면, 채권 판매자의 수중에는 더 많은 화제가 쥐어질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사람들은 화폐 보유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때 통화주의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상적인 거래에 필요한 돈만을 수중에 갖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 현금이 풀리면서 여분의 돈이 수중에 들어오게 되면, 사람들은 상품, 재화, 실물자산 등에 그 돈을 지출할 것이다. 따라서 GDP는 상승한다. 반대로 FRB가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갖고 있던 채권을 매각한다면, 사람들이 수중에 갖고 있는 돈의 양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람들은 화폐 보유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싶어하기때문에 대신 씀씀이를 줄일 것이다. 따라서 GDP는 하락한다. 통화 정책 monetary policy 이란 본질적으로 민간 부문에서 일어나는 화폐 유동성과 벌이는 게임이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일정 수준으로 유동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한, 통화 정책은 GDP를 예측할 수 있으며, 또한 그것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FRB는 국민들을 부처님 손닥에 올려놓고 그들의 지출 수준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 P453
이때 케인스가 주요 비판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화폐의 유통 속도였다. 왜 화폐의 유통 속도가 일정하다고 가정해야 할까? 중앙은행이 화폐 공급량과 유동성을 높이면 어떻게 될까? 왜 사람들이 평소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돈 외에 추가로 생긴 돈을 주로 지출할 것이라고 가정해야 할까? 오히려 그 돈을 이불 밑이나 벽장에 보관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만일 그들이 추가로 생긴 돈을 벽장에 꼭꼭 숨겨 놓는다면, 화폐의 유통 속도는 떨어질 것이고, 중앙은행이 가속 페달을 밟아 화폐 공급량을 늘린 것은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결국 GDP에도 큰변화가 없을 것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불황이 닥쳤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화폐수량설을 옹호하는 통화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구매를 위해 또는 ‘만약을 대비해‘ (예비적 동기) 화폐를 보유한다고 주장했지만, 케인스는 제3의 동기, 즉 ‘투기‘를 목적으로 돈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보통 전자는 거래적 동기 transactions motive라부르고, 후자는 투기적 동기 speculativce motive라 부른다. 사람들은 주식이나 채권 시장에 투자하기 위해 여분의 유동성을 보유할 수도 있다. 만일 금리가 오르면 화폐에 대한 투기 수요 역시 오를 것이다. 따라서 화폐공급량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려고 하는 욕구도 덩달아 상승할 수 있다.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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