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청준이 암시하듯 예언이 동시대의 사회역사적 진리에 대한 통찰이자 그 통찰에 대한 헌신일 수있다면, 우리 문학사에서 그런 예언자를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올해 50주기를 맞은 김수영이야말로 그에 부합하는 사례일 수 있다. 김수영 자신은 "나는 사후 백 년 후에 남을 시를 쓰려고 노력할 수는 없지만, 작품이 끝난 후 반년 정도의 앞을예언할 만한 시를 쓰고 싶다"(<시작 노트 2>)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지나치게 겸손했던 것이 아닐까.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사랑의 변주곡>) 이를테면 이런 구절은 1980년 5월, 1987년 6월, 그리고 2017년 겨울에 대한 예언이라고 할 수는 없겠는가. - P196

물론 다른 이들도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서 입신출세한 사람을 선망은 할 수 있어도 존경까지 할 필요는없다.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그 고통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사람,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자신의 안락을 포기한 사람들만을 존경한다. 나는 우리의 대통령이 부디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혹자는 성품이 아니라 능력을 봐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성품이나 능력이냐‘라는 물음은 잘못된 양자택일이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능력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성품이 곧 능력이다. 이 판단이 정치적으로는 매우 순진한 것일 수있음을 안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만 싶다.
환상을 품고 있지는 않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구세주가 될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삶이 오늘의 그를 믿게한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능력과 그것을 차마 외면하지못하는 능력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치명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귀 기울일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말을, 반값 임금에 혹사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을, 차별당하는 소수자들의 말을. 그 고통을 알겠어서, 차마 도망칠 수 없어서,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대통령(大統領)이 대통령(大痛靈)이면, 우리 중에 가장 크게 아파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2017.5.4) - P203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에 따르면 ‘인간‘과 ‘사람‘은 다르다. 인간은 그냥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고 사람은 ‘사회적 인정‘의 문제라는 것. 한 ‘인간‘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31쪽) 우리 사회가 장년층·노년층을 사회적 인정의 장에서 배제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고 삶의 의미를 생산해내는 거대한 발전소를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단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기만 할까. ‘사회적 인정‘의 영역에서도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는 날들이다. - P211

첫째, 대상이 ‘강자인가 약자인가‘는 오래된 기준 중 하나다.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강자를 대상으로 할 때에만 풍자다. 그때 그 일은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폭로하는 숭고한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적 권력자와 단순한 유명인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권력자는 대개 유명인이지만, 유명인이 연제나 권력자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나에게 위해를 가할수 있는 사람이 권력자라면, 직업의 성격상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졌을 뿐인 사람은 유명인이다. 유명인을 향한다고 해서 조롱이 풍자로 변하지는 않는다. 오늘날의 매체 환경 속에서 실명이노출된 유명인과 익명의 보호를 받는 네티즌 중에서 누가 더 강자인가 유명인이라면 감수해야 할 고통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가학을 합리화하는 궤변이다.
둘째, 대상의 속성이 ‘선택인가 조건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권력자의 판단과 행위와 그 결과가 광범위하고 부정적인 대중적 영향을 끼쳤을 때, 그의 그런 ‘선택‘과 관련된 사항들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존재가 스스로 선택한바 없는 자신의 ‘조건‘은 웃음거리가 될 수 없다.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걸음걸이를 문제 삼는 일은 비판도 풍자도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전한 권력자이고 박근혜 현 대통령은 그야말로 권력자다. 그러나 누가 그들의 판단과 행위와 그 결과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외모와 성별을 웃음거리로 만든다면 그 대상이 아무리 권력자라 해도 그 행위는 비열하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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