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9일 토요일

주란
창 너머로 화단을 보고 있었다.
체리 묘목 두 그루와 해당화 묘목 한 그루가 심어져 있을뿐인 엉성한 화단이다. 화단 앞으로는 어서 옮겨 심어지기만을 기다리는 튤립, 제라늄, 데이지 화분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창을 통해 주방으로 환하게 들어오는 햇살의 기운에 이제 정말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침착하고 온화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빛이 사방에서 들어오는 신도시의 단아한 목조 주택에는 따뜻한 주인이 필요한 법이니까. - P7

남편은 누구나 꿈꾸는 집을 지어주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천장이 높고 창 너머로 나무가 보이는 집에서 살면 모든 것이 평안해질 거라고 말했다. 설계사와 인테리어 미팅을 할 때도, 남편은 편안하고 따뜻한 컬러를, 그런 가구를, 그런 분위기를 주문했다. 남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남편의 모든 제안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한다고 하자 친구들이 더 들뜬 반응을 보였다. 모두가 나를 부러워했다. 그래, 그래서 나는 그 시선에 우쭐하고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정원이 있는 주택보다는 고층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를 더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보다 아무도 우리집을 침범하지 않기를 원했다.
이 집으로 이사를 하고 몇 주간은 행복했다. 하지만 이내 집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새시 공사가 잘못됐는지 바람이 불 때면 커다란 집의 2층 창문으로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침입자들이 방 어딘가에 몰래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닫힌 방문들을 선뜻 열지 못해 청소도 못 할 때가 많았다. 손 없는 날 이사를 해야 한다는 내 말을 무시하고 2월의 28일에 이사한 일도 두고두고 걸렸다. - P46

내가 엄마를 보러 올 때면 올케언니는 끊임없이 자신을 피해자 위치에 놓았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착한 며느리 자리에 자기를 놓고 나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이상, 그 검은 속내가 어떻게 폭력적으로 드러날지 한편으로 궁금했다. 남들 눈에는 엄마가 올케언니에게 함부로 대하면서 대접받으며 사는 듯이 비쳐졌지만, 이미 엄마의 방은 창고가 되어버렸고 엄마도 그 창고 안의 물건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아가씨는 좋겠어요. 애기 낳으면...... 신경쓸 일도 없이 단출하게 세 식구 사니……. 서방님도 정규직이고......"
올케언니의 말들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비웃었다. 얼마나 무책임한 부러움인지, 끊임없이 자신을 피해자로 소환하면서 부리는 이기심에 치가 떨렸다.
올케언니는 내가 가져온 차가버섯이 자신에게 도착한 선물인 양 포장에 적힌 효능을 읽었다. 올케언니의 모습은 항상가난을 달고 살아온 사람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나는 그렇게자신을 피해자로 두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만드는 가난을 증오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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