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머리칼과 잘록한 허리, 밤을 새워 지분대던 가슴과 길쭉한 다리, 사랑을 나눌 때면 천장을 향해 만족스러운 듯 뻗던 희고 긴 손가락이 기억과 함께 호수 바닥으로 사라졌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그를 재촉하듯 질러대던 교성은 이미 숨을 잃은 다현이 더이상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다현을 완전히 삼킨 호수는 조용히 파문을 일으켰다. 거친숨을 헐떡이며 준후는 파문의 궤적을 응시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 P7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두고 나무 마루 위로 올라갔다. 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싸구려 문짝은 시트지가 떨어져 덜렁거렸다. 오른쪽으로 난 문을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할머니가 쓰던 안방인 것 같았다. 벽에는 채다현으로 보이는 어린아이의 유치원 졸업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옆으로는 크고 작은 사진들이 액자도 없이 벽에 붙어 있었다. 젊은 여성이 아기를 안고 있는 계곡의 사진, 아름드리나무앞에서 노인이 무심하게 어딘가를 쳐다보는 사진, 꽃 앞에서 찍은 사진, 동물원 사진. 거의 모든 사진에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그 아이는 열 살가량으로 보이는 사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복은 거기서 멈춘 것 같았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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