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정말 이런 일이 있으려야 있을 수도 없겠지만, 또다시 물에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 P22

 그나마 이 강물조차, 주위 나무나 풀들 보세요, ‘볼만하다‘는 뜻에서의 볼거리가 아니지요. 풍성하지만 제멋대로뻗어 정돈된 느낌 없이 시야에 쏟아져 들어올 뿐이니 경관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위압 내지는 맹목에 가깝기도 하지요. 아,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 강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가게가 강을 바로 앞에 두고 있어서 운이 좋은걸요. 정돈되지 않은 숲은 보잘것없지만 인공적이지 않아서 좋고요. 흘러가는 강은 어떤 사진이나 그림에도 담아 가둘 수 없고, 강줄기를 따라 우거진 수풀 또한 그렇지요. 그게 사람들이 강으로 오는 이유 같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정신 차려보니 곤은 별 볼일 없는 동네인 만큼 자신이 굳이 그녀를 데리고 돌아다닐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해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그럼 강을 보고 싶어요. - P66

그리하여 곤은 강을 따라 걷는 동안 자기가 아는 걸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테트라포드 사이에 상반신이 끼인 채식어 있던 취객. 수중보(水中褓) 아래에서 휘몰아치는 순환류의 역회전. 강풍에 무너진 나무줄기가 만드는 스트레이너와그 속에서 발생하는 유속과 무관한 거대한 수압에 대하여.
나선형 물살이 강 언덕으로 밀어 올리는, 버려진 낚싯바늘을 비롯한 각종 위협적인 부유물들. 몇 년에 한 번 꼴로 한두구씩 절망의 무늬를 그리듯 수면에 떠오르곤 하는 사람들. 어느 하나 위험하지 않은 구석 없이 그 자체로 거대한 흡반과도 같이 악착스러운 동물성을 지닌 강물에 대하여. - P68

그 무렵 강하는 「장자』를 어린이용 다이제스트 판으로 엮은 학급문고 도서를 읽고 있었대요. 장자의 첫 장에는 이런얘기가 있거든요.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강하는 당신의 아가미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으로서 이거야말로 이 아이한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하지만 그래놓고는 당신의 이름을 부른 적이거의 없었죠. 그건 그다음 장에 있던 한 줄이 일종의 예언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이 물고기는 남쪽 바다로 가기 위해 변신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고 한다. 그의 등은 태산과도 같이 넓고 날개는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과같으며 한번 박차고 날아오르면 구만리를 날아간다고요.
언제 어떤 일로 떠날지 모르는 아이였잖아요. 오랜 기간 이내촌에 머물긴 했지만 실제로 당신은 불의의 사고로 떠나왔고요.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음절이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곤 왜 그래요? 고개 좀 들어봐요. 잠깐, 어디 가는 거예요? 또 그렇게 무턱대고 물에 들어가지 말고요. 저기 사람들 있잖아요 - P210

•••••• 내 물건 때문에 옷이 모두 젖어 미안하니까 잠깐 우리 텐트에 들러서 아빠 옷이라도 빌려드리겠다고 했지만,
그 아저씨는 원래 자기는 바다가 좋아서 물에 아주 들어가사는 사람이니까 괜찮다고 그러잖아. 그래서 왜 바다에 사느냐고 물어봤거든. 아주 중요한 사람을 찾고 있대. 그런데왜 밖에서 안 찾고 물에서 찾느냐고 물었더니, 사실은 중요한 사람의 시체를 찾고 있다는 거야. 그게 조금 무서워져서
그럼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하고 고개를 깊이 숙였어. 근데 머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그 아저씨가 몸을 돌리고 걸어가더라고.
나는 그때 분명히 봤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아저씨의 젖은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날렸거든. 그때 목과 귀사이에 깊이 패어 있는 상처가 보였어. 그 상처가 살짝 떨리면서 물이 조금 흘렀고 아저씨한테서 나는 바다 냄새가 바람에 실려 더 진해졌어. 키 차이도 나고 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바람에 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는데, 좀 더 가까이서 올려다보고 싶어져서 다가갔지만 아저씨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바다로 들어가버렸어. 내가 눈 한번 깜박였을 때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는데, 아저씨 머리가 완전히 물속으로 사라지기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어.
엄마, 내가 인어를 봤다니까? 그 아저씨는 분명 바다 깊이 궁전에 사는 인어 왕자님일 거야. 그런데 마녀가 준 약을 먹고 두 다리가 생긴 거지. 인어왕자님은 누구를 위해 다리를 얻은 걸까? 그러면 역시 언젠가는 물거품이 되어서 아침 햇살에 부서져버릴까?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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