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무인도에서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남아서 구조를기다릴 것인가를 묻는다면 대다수 사람은 생존 가능성이 큰 쪽을선택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무인도에 머무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화의 주인공이 그 섬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때 그 계획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주인공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무인도에서 탈출하고 싶어 할까? ‘진짜‘ 인생, 즉 그저 목숨을 연명하는 삶이 아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와 가치를 구현하고 살아야 할 곳을 꿈꾸기에 그는 생존이 보장된 그 섬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나는 주인공의 탈출을 ‘사람됨을 실현하려는 인간 욕망에 대한 은유‘로 읽는다. 인간의 본성은 그저 생존하는 삶, 그냥저냥 살아가는 인생을 지향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섬 안‘에 하릴없이 머무르며 안주하지 않고 ‘섬 밖으로 용기 있게 나가 진정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 P177

정결과 부정, 성과 속은 윤리를 형성하였다. 현대인은 윤리를 옮고 그름의 영역에서 사고한다. 그러나 원초적으로 윤리는 상당 부분성과 속을 규정하는 데에서부터 자랐다. 정결함과 거룩함에 관한 규정을 어긴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혐오를 일으키는 대상은 거룩한 존재인 신의 명령을따르지 않고 죄를 저질러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져서 많은 사람에게 분노의 대상이 된다. 혐오의 대상이 신에게진노를 사서 공동체에 해를 끼칠지 모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사고에서는 어딘가에 재앙이 닥치면 분명히 누군가가 큰 죄를 지어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쉽게 추측하기 마련이다. 그 ‘누군가‘라는 공란을 채울 사람으로 구체적인 인물이나집단이 지목되면 그는 공동체 구성원에게서 심한 경멸과 조소, 차별 대우를 받게 된다. ‘누군가‘는 이에 항변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심한 경우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그를 대놓고 ‘공동체의 가해자인 죄인‘ 취급하며 마치 입에 묻은 더러운 것을 떼어내듯공동체 밖으로 몰아내려 하기도 했다. - P189

가장 거룩한 것이 가장 심각하게 타락할 수 있다. 또 가장 큰 사랑이 가장 무시무시한 혐오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윤동주의 시 「참회록」의 한 구절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성찰을 통해 늘 근원으로 자신을 다시 돌려세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 P214

그럼에도 저는 팬데믹 국면을 지나면서 다소 아이러니할 수도있지만 긍정적인 변화일 수 있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등록 체류자‘라는 새롭게 자리 잡은 용어에 관한것인데요. 이주 노동자 중에서 체류 기간을 넘겨 미등록 상태가 되는 경우를 ‘미등록‘이라 부를 것인가 아니면 ‘불법‘이라 부를 것인가 사이에는 엄청난 어감 차이가 있거든요. 사실 국제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 인권위원회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불법‘, 즉 illegal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서류를 갖추지 못한‘, 즉 undoucumented로 부르자는 취지에서 ‘미등록‘ 혹은 ‘미등록자‘라는 용어로 바꿔 부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불법‘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고집해왔습니다.
이런 기류에 극적인 변화를 몰고 온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였습니다. 2021년 봄쯤 전국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이 매우 심각해질 때였는데, 당시는 ‘미등록 체류자‘든 ‘불법 체류자‘든 용어와 무관하게 일단 누구라도 감염되면 그로 인해 공동체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죠. 그러니까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나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누구나 절실히 느낄 수밖에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불법‘이라는 단어 대신 ‘미등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겁니다. 즉, 정부가 대대적인 캠페인까지 벌이면서 ‘미등록 체류자‘라도 추방하거나 강제 출국시키지 않을 테니 의심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보건소를 방문해서 검사받으라고 권유한 겁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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