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이 식었나 봐?"
다짜고짜 질렀더니 A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이 구례를찾는 횟수가 줄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A와 나는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이 다르다. 나는 참으로 더디다. 처음에는 높은 벽을 치고 문 열어줄 사람을 꼼꼼히따져 고른다. 그 문이 나에게로 향하는 마지막 문이 아니라 첫문이다. 10년쯤은 만나야 아,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싶다. A는 처음에 훅 들어온다. 서로 살가워질 때까지 시간과 공력을 쏟아붓는다. 친구가 되었다 싶으면 긴장이 풀리고 그래서 처음보다 느슨해진다. 누구의 방식이 옳고 그른건 아니다. 그저 서로의 방식과 속도가 다를 뿐이다. 알면서도 이 다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관계를 처음 맺을 때는 A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나에게 서운했고, 관계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이번에는 내가 예전처럼 자주 오지 않는 A에게 서운했다. 뭐, 그러면서 조금씩 더 알아가고더 친해지는 것일 테니 큰 상관은 없다. - P162

그사이 아빠는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신 교수님에게 보냈다. 돈으로 환산하면 몇만 원도 되지 않을 감자며, 대봉이며, 밤이며, 양파며, 모두 아빠가, 노동과 결코친하지 않은 아빠가 노동으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아빠도 알았던 것이다. 신 교수님은 단순한 교수가 아니라 내인생의 스승이라는 것을. 내 영혼의 아버지라는 것을.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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