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끊임없는 움직임의 연속이다. 태양이 매일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인류는 끊임없이 이주와 정착을 반복하며 생존의 길을 개척했다. 이러한 ‘이동‘은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인류의 삶과 문화를 형성해왔다.
‘이주(移住)‘는 생존, 기회,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다. 경제적 기회를 찾아 나서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모험을 감행하고, 위기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아 떠나는 등 다양한 동기가 있다. 반면 ‘이산(移散)‘은 선택이 아닌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규모 또한 개인을 넘어 공동체 단위 움직임을 유발한다. 전쟁, 재난, 정치적 분쟁으로 집단이나 민족이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는 ‘디아스포라(Diaspora)‘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주와 이산의 주제는 단순히 물리적인 움직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 소속감, 삶의 방향성, 해소되지 않는 그리움 등이 얽힌 내적인 여정이기도 하다. - P21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미그란스(Homo Migrans)‘이면서 동시에 ‘호모 하브리두스(Homo Habridus)‘다. 호모 미그란스는 ‘이동(이주)하는 인간‘이라는 뜻이고, 호모 하브리두스는 ‘잡종 인간‘이라는 의미다. 인류는 아프리카대륙에서 탄생했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이동과 정착을 반복하며 여러 대륙으로 이주해 갔다. 최근에는 인류가 오스트레일리아와 유럽에서도 기원했다는 주장을 담은 ‘다지역 기원설‘이 아프리카 기원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는하다.
아프리카 기원설이든 다지역 기원설이든 공통된 주장은 인간이지닌 놀라운 두 가지 속성, ‘이동성‘과 ‘혼종성‘이다. - P39

인종 신화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인종이라는 개념은 인류가 인간의 다양성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이러한 개념이 본격화한 것은 근대 유럽 국가가 먼바다와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15세기 말 이후 신항로 개척 시대부터로 볼 수 있다. 유럽인은 먼 항해 끝에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만난, 자신과 너무도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타자화‘하고 그들을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인종으로 규정하고 전형적인 이미지를 부여했다. 이렇듯 인종과 인종주의는 유럽인이 신항로 개척을 명목으로 다른 대륙에 진출하고, 탐험하고, 침략하고, 약탈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근대의 발명품인 셈이다. - P41

인간을 인종의 잣대로 구분하는 유럽인의 시도는 16세기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분류, 즉인류를 피부색으로 구분하는 최초의 시도는 18세기 스웨덴 생물학자 칼 폰 린네 (Carl von Linné)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린네는 인류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분류학을 정립한 인물로 유명하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학자들의 순수한 분류가 분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이 (difference)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차이에 인간이 의도적으로 위계(hierachy)를 부여하는 것이 문제다. 인간이 자연과 사회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에 의도적으로 위계를 부여하는 순간 차이가 차별을 낳고, 불공정과 불합리함이 발생하고, 폭력과 학대로 이어질 위험성이 생겨난다. 위계는 우와 열을 정하고 그에 따라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서로 다르고 다양합니다.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르고 제각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르게 대할 수밖에없고,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억지 논리이자 궤변으로 귀결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 지배한 제국주의 시대 유럽인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차별이 곧 평등‘이라는 논리가 있다. - P43

16~19세기, 제국주의 횡행으로 전 세계적으로 노예제가 행해졌다. 그때로부터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와 관련한 피해보상을 한다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을실제 법으로 따지면서 판단을 내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유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의미 있는 일이다. 카리브해 여러 국가를 비롯해 과거에 노예제로 심각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좀 더 힘 있는 목소리로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식민주의의 큰 피해자인 한국인은 스스로 완전무결하다고 여기며 가해자인 일본을 향해 반성과 사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기만 하면 될까? 아니,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국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거치며 우리보다 경제적으로뒤떨어지는 여러 국가에 산업을 이전하는 과정에 과거 유럽 버금가는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한국인이 과연 피해자인가?‘ ‘한국인도 가해자인 것은 아닌가?‘라는 성찰적 질문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복합적인 차별과 구조적인 차별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아니라 딱히 가해자가 없는 것 같은데도 여전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다. 어떤 측면에서 인종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성차별, 계급차별과 결합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P67

 그리고 차별이란 근본적으로 ‘타자화‘의 산물이다. 타자화란 글자 의미 그대로 다른 사람을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규정하고 차별 대우하는 행위다. 말하자면, 나는 고귀하며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지만 나에 의해 타자화된 다른 사람은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 즉 고귀하지도 않고존중받을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는 의미다. 다른 사람을 나와 다른인종으로 대하는 것이 타자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어떤 사람이 비닐하우스 집에 살아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그가 타자화의 대상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타자화는 노예제 시절 백인이 흑인을 ‘말하는 가축‘ 정도로 취급했던 역사와 맥이 닿아 있다. 또한 나치가 유대인을 죄책감 없이학살하기 위해 그들을 ‘비인간화‘하는 과정이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진행된 것도 타자화와 관련이 깊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분 짓는 타자화는 차별을 유발하는심리 기제로 작용할 위험성이 높다. 여기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가르는 타자화는 ‘단순화‘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인간은 원래 복잡한 존재다.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도 ‘나라는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이런 유형이다. 저 사람은 저런 유형이다‘라고어떻게 쉽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을 그토록 쉽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허구다. 이것이 바로 ‘단순화‘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형화된 분류에서 한 발 물러나 상대방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 마땅한 고귀한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이지리아작가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는 "모든 스테레오 타입은 단순화에서 출발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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