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 쓴 『통섭』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죠. 윌슨은 앞으로 인문사회과학이 사회생물학의 하위분야가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면서도 사실은 되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문학도들은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온갖고전을 읽습니다. 지금도 지식인들이 청소년들한테 그런 책을 권하고 있죠.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칸트, 프로이트, 맑스, 니체, 뭐 그런 ‘위대한 철학자‘들이쓴 책 말입니다. 물론 이런 분들이 나름대로 인간과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여러 해답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명백한 한계가 있어요. 그 모든 대답이 관찰과 사색에서 나왔다는 것이죠. 그들은 인간이 ‘물질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관찰로 얻은 빈약한 정보를 토대로 인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가설을 세웠다는 말입니다. - P91
기술이 발전해도 공부의 본질과 목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크게 바뀝니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쓴 『공감의 시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좀 어렵긴 한데, 그래도 읽을 만합니다. 21세기는 공감의 시대입니다. 남을 밟고 올라서는 능력은 경쟁력이 아닙니다. 남을 이해하고 남에게 공감하고 남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경쟁력입니다. 좋은 의미의 경쟁력이죠. 저는 과학혁명의 시대에는 더욱더 확실하게 공부의 본질을 붙들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간만 할 수 있다고오랫동안 믿었던 지적 노동 가운데 많은 것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되겠지만, 공감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그렇지 않기때문입니다. - P118
우리는 모든 것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과학혁명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독서도 글쓰기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한 공부도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그 인생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것입니다. 수학 점수, 영어 점수를 따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을 알고 남을 이해하고 서로 공감하면서 공존하는 인간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 P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