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자학을 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닙니다. 글을쓸 때 개별적 경험을 일반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싶어서 꺼낸 겁니다. 신영복 선생은 왜 ‘떡신자‘와 ‘창신꼬마‘의 일화를 소개한 걸까요? 그분은 자기 변화는 인간관계의 변화를 통해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뀌어야 개인의 변화도 완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변화가 그 사람의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이라는 겁니다. 같은 키의 벼 포기나 어깨동무하고 있는 잔디가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신영복 선생은 재소자들과 맺고 있었던 인간관계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신뢰를쌓아야 했고, 신뢰를 쌓기 위해 ‘쪽팔림‘을 감수하면서 교도소문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떡신자‘를 자처한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글에는 이런 게 많습니다. ‘떡신자‘와 ‘창신꼬마‘라는 개별적 경험을 통로로 삼아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면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보편적 결론으로나아가는 서술방식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독자의 공감을 얻는 데 매우 효과적인 글쓰기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개인의변화와 인간관계의 변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영복 선생의 견해는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배척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개별적 경험을 보편화하는 글쓰기의 방법만큼은 누구나 배워도 좋을 것이라 믿습니다. - P42

그러나 어쨌든, 어린 시절 저는 「제인 에어』에서 인간적·사회적 공분(公憤)을 느꼈습니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다르지않은 감정을 느낍니다. 사회악의 구조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샬럿 브론테를 비판하거나 소설 『제인 에어를 혹평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돈과 권력을 가졌으나 인간으로서는 비천한 자들이 고귀한 인간적 감정을 지니고 자기 힘으로 힘껏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공연하게 경멸하고 모욕하는세태에 대한 공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진화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공분을 느끼는 능력은 문명이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고 하더군요. 사회적 공분을 느끼는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에 속한다니 반갑지 않습니까? 역시 공부는 좋은 겁니다. - P47

카이스트에서 가르치는 정재승 교수나 김대식 교수 말씀으로는, 뇌가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는 가치판단을 내포한 지식과 정보를 가르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하더군요. 어릴 때는 도덕이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옳은 견해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뇌가 덜 자란 상태에서 초기에 입력된 정보들은 나중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잘 바뀌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독재자는 유아 교육을 장악합니다. 나치도 그랬고 스딸린도 그랬으며 김일성과 박정희도 그랬습니다. 북한이 저렇게 못살고, 인민들이 굶어죽고, 독재가 극심한데도 반세기넘게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아 교육을 확실하게 장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유치원 때부터 ‘위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은혜‘를 가르치면 어른이 된 후에도 죽은 수령의 사진만 보면 저절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뇌가 지닌 결함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이죠. - P48

거듭 말합니다. 공부는 인간으로서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하는 겁니다. 학위를 따려고, 시험에 합격하려고, 취직을 하려고 공부를 할 때도 있지만 공부의 근본은 인생의 의미를 만들고 찾는 데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할 때,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결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인쇄된 책이 기독교성경이라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거든요. - P60

인지혁명의 핵심은 언어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생각이나감정이 먼저고 언어는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데 필요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감정을 느끼는 데도 언어가 필요합니다. 분노, 사랑, 연민, 복수심, 어떤 것이든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게 뭔지 인식하려면 그 감정을 나타내는 말을 알아야 하니까요.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어휘를 알아야 합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문장 공부를 열심히 해도 아는 어휘가 적으면 글이 늘지 않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어휘의 양을 늘리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이에요. 아무리 멋진 조감도와 설계도가 있어도 건축자재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쓸 수 없어요.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먼저 어휘를 늘리라고 권하는 겁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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