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신학자이면서 생물학에도조예가 깊었던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1743~1805)는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들이 자연적인 과정만으로는 도저히 생겨날 수 없기 때문에 지적인 설계자 intelligent designer가 필요하다고 논증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놀라운(?) 기능을 하는 시계를 처음 보고 그것의 창조자 혹은 설계자를 떠올리는 부시맨의 추리와도 동일하지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이자 과학 대중화의 선봉장인 도킨스는 바로 그 추리가 오류임을 밝히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생물계의 복잡한 기능들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지적인 설계자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간했던 다윈이야말로 페일리식의 설계 논증을 혁파한 최초의 인물이며, 자신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 자연선택의 창조적인 과정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쉽게 설명해준 해설가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는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괴로워했던 다윈보다 한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용감한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는 다윈으로 인해 지적으로 충실한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말이죠. - P249
혹자는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그런 눈먼 시계공이 과연 인간의 복잡한 눈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또는 ‘도플러 효과를이용해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박쥐의 반향 위치 결정 능력이과연 그런 과정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이런 의문에 대해 도킨스는 아무렇게나 자판을 두들겨 특정한 문장을 만들 개연성을 실제로 계산해보는 방식으로 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전제들 중 하나는 우연히 맞춘 알파벗은 보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식의 누적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 단지 몇 십 차례만 반복되어도 특정한 뜻이 담긴문장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즉 복잡한 기능의 생명체가 진화할 확률은 "마치 고철더미 위에 태풍이 분 후에 보잉 747이 만들어질 확률과 비슷하며 그것은 명백히 0"이라는 창조론자들의 해묵은 비판에 대해, 자연선택에의한 진화는 결코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논박하고 있는 셈이죠. 저자에 의하면 자연선택 과정이 무작위적이라는 주장은 오해일 뿐입니다. 그 과정은 오히려 무작위적인 변이 생성을 추려주는 누적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입니다. 따라서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자연계에 만연해 있는 놀라운 적응 형질들도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자연선택에 의해 얼마든지 진화가 가능하게 되죠. - P251
저자는 이런 독특한 현상을 두 가지 가설, 즉 ‘아빠를 집에와 ‘여러 아빠‘ 가설로 설명합니다. ‘아빠를 집에‘ 가설에 따르면, 배란 은폐는 남성들로 하여금 가정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을 갖도록 하기위해 진화했습니다. 반면 ‘여러 아빠‘에 따르면, 배란 은폐는 여성으로 하여금 더 많은 남자들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도록 하고 그 결과 남성들이 여성이 낳은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진화했습니다. 서로 상반된 이유에서 배란 은폐가 진화했다는 두 가설을 비교 분석하면서, 그는인간 암컷만이 가진 특성인 배란 은폐의 수수께끼를 한 꺼풀씩 벗겨주고 있습니다. - P266
그렇다면 여성의 폐경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저자는 집단을 이루고 사는 인간에게 여성의 폐경은 가족을 돌보고 자식이나 손자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기 위해 여성의 몸이 선택한 하나의 진화적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진화의 논리로 보면 이 모든 것은 여성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범고래처럼 몸집이 크고 사회를 이루고 사는 포유류 종에게도 암컷 폐경 현상이 나타난다고 이야기합니다. - P267
《밈》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문화의 진화에 대해 매우 독특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서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이며 과학저술가인 수전 블랙모어Susan Blackmore(1951-)는 밈의 관점에서 인간과 문화의 진화를 새롭게 재해석했습니다. 여기서 ‘밈‘이란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무언가‘를 뜻합니다. 가령 우리가 누군가를 모방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내게로 ‘무언가‘가 전달되는데, 그 ‘무언가‘는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고, 거기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전달되면서 저만의 생명을 지니는 것이 바로 밈입니다. 즉 밈이란 모방이라는 비유전적 방법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의 요소를 뜻합니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 자체가 밈들이 뇌를 재편해서 자신들에게 더 나은 서식처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난 인공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커다란 뇌는 모방의 산물로서 다른 영장류의 뇌와 구별됩니다. 블랙모어에 따르면 우리의 언어도 밈이 더 많은 자신의 복제본을 퍼뜨리기 위해 진화시킨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이타성과 종교와 같이 그동안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되어온 인간의 본성들도 밈 이론의 관점에서 재편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타성의 경우, 이타적인 사람은 인기가 있고 따라서 그(그녀)의 행위는 모방되기 더 쉽고, 결국 그(그녀)의 밈이 다른 사람들의 밈보다 더 널리 퍼진다는 것이지요. 종교적 밈의 경우에는 두려움과 이타성을 통해 자신의 밈을 더 널리 전파합니다. 이때 종교적 밈의 확산은 세상에 대한 진실성과는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 P291
"이들을 지구의 정복자로 진화시킨 원동력은 혈연(유전자)인가요. 집단인가요? 혈연 선택 이론의 대장이었던 당신이 어떻게 이런 변심을 할 수 있는지 솔직히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윌슨- "그동안 그것을 얼마나 옹호했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옳으냐 그르냐가 더 중요하지요. 곤충의 복잡다단한 생태를 더 깊이 연구하면서 혈연 선택보다는 생태적 요인들이 진사회성의 진화를 이끌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령, 진사회성 곤충들은 모두 암컷이 집을 짓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유전자를 얼마나 공유했느냐보다 집을 공유했느냐가 더 중요한 요인입니다. 또 다른 정복자인 인간의 경우 사회성 진화의 원동력은 확실히 유전자나 개체가 아닌 집단 선택입니다. 인류의 진화사에서집단 간 충돌은 끊이질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족주의, 명예심, 의무감 등이 이기심을 억누르게끔 진화할 수 있었지요. 개미든 인간이든 혈연 선택만으로는 그들의 진화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수준에서 작용했던 선택압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그런 다 수준 선택의 산물입니다. 문화, 도덕, 종교, 예술이 그 예이지요. 이전에 난 틀렸었습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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