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닛: 그런데 선생은 그런 패러다임에도 일생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한창 잘 나가다가도 위기를 맞게 되고 새 패러다임으로교체가 된다고 하셨잖아요? 쿤 : 맞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과학혁명‘이라고 불렀죠. 우선패러다임 얘길 좀 더 해볼게요. 물리 교과서를 보세요. 처음에는 원리나 법칙이 설명되고 전형적인 예제들이 풀이와 함께 소개됩니다. 그다음은 연습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걸 못 풀면 누가비난받습니까? 똑똑하지 못한 학생이 비난을 받지, 문제 자체나문제 제공자가 비난받지는 않죠. 대부분의 과학자는 평생 이런식의 연습문제만 풀다가 죽습니다. 데닛: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과학자는 연습문제만 풀다가 간다는 뜻인가요? 쿤 : 연습문제의 특징이 뭡니까? 이미 답도, 그 답에 이르는 길도 있다는 거죠. 아이들의 그림 퍼즐도 마찬가지에요. 이미 원판그림(정답)이 있고 그 그림 조각들을 맞추는 방법도 정해져 있지요. 이게 바로 패러다임의 특성이에요. 즉 과학자는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패러다임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탐구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든 그것을 통해 보려하지요. 실제 경험과 이론 틀이 삐걱거리더라도 과학자는 자신의 무능을 탓할 뿐 틀자체를 의심하진 않습니다. - P58
한 패러다임에 대한 반례들이 쌓여도 혁명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것! 패러다임을 부여잡고 있는 과학자들은 반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곧 해결될 거라 믿는 거죠. 그런데 반례들이 점점 쌓이고 대가들도 해결을 못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다 보면 그때서야 심리적 위기감이 몰려옵니다. 그러다 주로 변방에서 신예들이 나타나 그 반례들을 풀어내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패러다임에 목을 매던 사람들이 새로운 진영으로 급격히 이동합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혁명입니다. - P61
데닛 : 네. 고맙습니다. 요즘 ‘진화‘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광고가 많잖아요. 제 독자는 그 용어를 그렇게 막 써도 되는 거냐고 질문하고 있어요. 진화에는 방향이나 트렌드라는 게 없는 것 아니나는 거지요. 선생의 《풀하우스》가 바로 그 문제에 천착한 책아닌가요? 굴드 : 네, 맞습니다. 저는 거기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며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라고 했죠. 생명이 어떤 트렌드나 방향을 가지고 진화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요. 그것은 진화적 변화의 특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데닛: 틀림없이 다윈도 선생의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할 것 같아요. 흔히 동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하등‘이니 ‘고등‘이니 하는 형용사를 갖다 붙이곤 하는데, 다윈은 그것이 잘못된 언어 습관이라고 말했죠. 현재 존재하는 모든 종들은 다 나름대로 자신의 환경에서 그럭저럭 적응하고 사는 놈들일 테니까요. 동물원의 침팬지가 우리보다 ‘하‘하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그들과 우리가 600만 년 전쯤에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사촌이라는걸 알면 살짝 민망해질 걸요. - P77
굴드: 물론, 예전보다 생명이 더 다양해진 건 맞아요. 그런데 다양성이 증가한 것을 가지고 마치 생명 진화에 트렌드가 있다는것처럼 결론을 내리는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죠. 한번 생명이 생겨나면 더 다양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단순한생명체, 박테리아로부터 시작했으니까요. 주가가 바닥을 치면 그다음부터는 상승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이런 광경을 떠올려보세요. 한 취객이 비틀거리면서 술집 문을 나섭니다. 그가인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도랑이 있고, 그 도랑에 빠지면 이야기는 끝입니다. 만일 술집 문을 나선 취객이 아무렇게나비틀거리면서 이동한다고 해봐요. 단 술집 쪽이나 도랑 쪽으로만 비틀거릴 수 있어요. 그 취객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데닛: 글쎄. 말로만 설명을 하니까 상상이 잘 안 되긴 하는데, 언젠가는 도랑에 빠지지 않을까요? 굴드 : 맞아요. 취객이 비틀거리다 술집 벽에 부딪치면 다시 도랑 쪽으로 비틀거리게 될 테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도랑에 빠지고 마는 거죠. 취객은 그저 아무렇게나 비틀거렸을 뿐인데 말이에요. 그가 도랑 쪽을 향해 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술집이라는 왼쪽 벽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닛: 그러니까 생명의 진화가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진행된 듯이 보이지만 이는 왼쪽 벽에 박테리아와 같이 가장 단순한 생명체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군요. 굴드: 바로 그겁니다. 취객이 도랑을 ‘향해‘ 이동했다고 말할 수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더 높은 복잡성을 ‘향해‘ 변화했다고 말할 수 없지요. 생명은 우리 인간처럼 복잡한 종의 탄생을 ‘향해‘ 달려온 게 아닙니다. 그저 다양하고 복잡한 종들이 생겨난 것일 뿐이지요. 박쥐가 어두운 동굴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복잡한 시각 장치를 퇴화시킨 것을 보면, 생명의 진화가 다양성과 복잡성의 트렌드를 보인다고 할 수 없습니다. - P78
제 책은 한마디로 ‘유전자는 이기적인데 어떻게 이타적인 인간이 진화할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거든요. 즉 유전자는 결국 더 많은 자기 복사본을 남기기 위해 인간을 이타적이게 만들었다는 얘기니까요. 데닛 : 인간이 유전자의 ‘운반자‘일 뿐이라는 말이 그 뜻이죠? 도킨스 : 네, 맞아요. 흔히 우리는 자기 자신이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주체이고, 또 그런 행동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존재라고 생각들을 하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프로이트이론을 보세요. ‘무의식‘이나 ‘리비도‘ 등으로 인간 행동의 원천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기적 유전자의 특성으로다른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닛: 그런데 왜 유전자의 입장에서 설명해야 하는 겁니까? 도킨스 : 진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유전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체나 집단은 그런 유전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한시적 존재일 뿐이죠. 유전자는 ‘불멸의 코일‘이에요.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이타적 행동뿐만 아니라 공격 행동, 양육 행동, 부모 자식 간의 갈등, 그리고 이성 간 대립을 비롯한 동물(인간을 포함한)의 다양한 사회 행동에 대한 하나의 포괄적 설명 체계라고 할 수 있지요. - P87
데닛: 좋아요. 그런데 선생은 11장에서 ‘밈meme‘이라는 새로운개념을 도입하고 있어요. ‘문화의 전달 단위‘를 뜻하면서 ‘유전teene‘에 대구가 되도록 그런 재밌는 용어를 만들었더군요. 대체 왜 그런 개념이 필요합니까? 이기적 유전자만으로는 인간을다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도킨스 : 선생도 잘 아시듯이, 인간에게는 문화라는 게 있지요. 그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밈은 문화와 관련된 복제의 기본 단위죠. 예컨대 종이학을 접는 방법에서부터 캐치프레이즈, 댄스, 이념, 종교처럼 복제되고 변이를 일으키며 대물림되는 대상이 바로 밈입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춤 기억나시나요?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의 인생을 바꿨습니까? 자본주의, 민주주의, 종교는 또 어떻습니까?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지만 다시 인간을 옥죄는 문화적 압력이죠. 자본주의 밈은 더 많은 자기 복사본을 퍼뜨리기 위해 우리를 고삐 풀린 무한 경쟁으로 내몰지요. 민주주의라는 밈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죄다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에요. 하지만 밈의 관점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져요. 밈도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복제자입니다. - P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