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핀치와 완두콩
그는 흥분된 마음으로 서가의 책들을 정신없이 들춰보기 시작했다. 책은 족히 1000권은 훨씬 넘어 보였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거실에는 아직도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는 금고털이범이라도 된 듯이 숨을 죽이며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그러기를 반시간 쯤, 드디어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고, 그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2009년 2월 12일 저녁, 런던 남동쪽의 다운Downe 이라는 작은마을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Darwin(1809-1882)이 1842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지낸 곳이다. 오늘 이 다운하우스Downe House는 수십 명의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정확히 200년 전 오늘, 이 위대한 영국의 과학자가 슈롭셔 주의 슈루즈베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만 50세에 <종의 기원>을 출간했으니, 올해는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것이 오늘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이다. - P8
도킨스: 제가 아이들의 종교 본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이들에게도 흔히 말하는 종교적 감성 같은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이 사실조차 진화론이 말해주는 것이지만요. 하지만 초월자에 대한 믿음이 진화했다고 해서 그것이 참이라거나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오류입니다. 우리에게 남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진화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것과 같은 이치이죠. 데닛: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자연주의 오류‘를 말씀하고 계시는것 같군요. 사실로부터 가치(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는. 도킨스 : 맞아요. 더욱이 종교는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우리 정신에 감염되는 특정한 믿음과 행위거든요. 그래서 판단 능력이 멀쩡한 성인들도 어느 순간 종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상한 행동을 하고 비상식적인 믿음을 전파합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매우 지적인 사람들도, 진화를 부정하고 경험적 근거가 전혀 없는 종교적 세계관에 집착하지요. 이건 모두 우리가 초자연적 설명과 종교적 세계관에 취약한 인지 구조를 진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맥락에서 아이들의 종교적 정신 학대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종교적 세계관을 많이 노출시키는 것은 면역력이 형성되지 않은 영아를 더러운 창고 속에서 키우는 것과 비슷한 미친짓입니다. - P27
데닛: 글쎄요, 선생님의 《사회생물학》에 대해서는 그런 비판들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통섭》에서 선생님이 보여준 지식통합의 노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진화생물학은 물론이거니와 나노물리학과 신경과학, 그리고 철학과 역사학 지식을 총동원했더군요. 심지어 예술과 종교의 최근 연구까지. 지식 자랑쯤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을 휴얼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몇가지 원리로 엮으려 한 것이죠. 그렇지 않나요? 저는 그중에서 ‘후성규칙epigenetic rule‘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後成規則 윌슨: 네. ‘후성규칙‘은 인지 발달의 편향된 신경회로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수렵 채집기에 인류의 생존을 크게 위협했던 뱀에게 느끼는 선천적 공포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진화적 이유 때문에 누구나 뱀에 대한 공포 기제를 갖고 태어나죠. 뱀과 친해지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이런 공포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숭배로 이어졌는데, 이것은 공포 회로가 숭배 문화로 발현된 것이지요. 이 외에도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남녀의 짝짓기 전략과 미의 기준 등도 후성규칙의 사례들입니다. 이런 규칙들은 유전자와 문화의 연결고리입니다. 데닛: 맞아요. 문화를 생물학적 조건과 무관하다거나 자율적으로 굴러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화도 결국 각 개인의 두뇌 작용들 아닙니까? 두뇌는 유전자로 만들어질 테고요. 문화의 특수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윈도 이미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 문화 보편적인 감정들에 대해 논의했었고요. 심지어 그런 감정들을 개나 오랑우탄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었지요. 나름 급진적이었는데 반응은 별로였던 것 같아요. 하하. - P33
데닛: Alfred R. Wallace라는 사람이 있죠. 당시에 아마추어 박물학자이긴했지만 사실상 다윈보다 먼저 자연선택 이론에 대한 논문을 정식으로 썼을 정도로 비상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윈이 자연선택의 힘에 대해 자신감을 잃었던 시절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그를 지지했었죠. 그러던 그가 한편으로는 인간 정신의 진화에 대해서만큼은 자연주의적 설명을 포기하고 초자연적 개입을 주장하다가 결국 말년에는 영성주의 piritualism로 흐르고 맙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윈은 "우리 자식을 죽일 거냐?"며 충고했다고 해요. 인간 정신에 대해서도 자연적 원인을 가지고 설명해야 한다고 하면서요. 색스: 인간 정신에 대한 자연과학적 설명은 결국 뇌과학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만일 다윈이 지금 청년이라면 뇌과학을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요? 아마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같은 책은 다시 썼을 겁니다. 하하. 데닛: 어쨌든 당신의 책은 뇌과학과 신경의학의 놀라운 성과를대중이 교감할 수 있는 언어로 탁월하게 표현한 이 분야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 책에 굳이 ‘도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소개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은 이 책이 ‘믿음이나 행동은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결국 뇌의 작용‘이라는 믿음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나누자면 불편한 도발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도발‘이라고 할 수 있겠죠. - P46
구달: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침팬지를 이런 식으로 소개하곤합니다. ‘동물들이 인간 세계에 보낸 대사 ambassador‘라고요 침팬지는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합니다. 인간 때문에흘리는 동물들의 눈물과 고통을, 그들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알려주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물에 대한 연구와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따로 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을 더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인간과 비슷한 면을 많이 보게되거든요. 이제 전 세계 조직을 갖고 있을 정도로 확산된 ‘뿌리와 새싹 Roots && Shoots‘이라는 운동은 바로 이런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젠 동물 보호 수준을 넘어 생태, 교육, 평화의 문제로까지 이 운동을 발전시켜야 하는 시점입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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