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곗덩어리Boule de suif
며칠을 연이어 패주하는 군대의 병사들이 도시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그들은 이미 군대가 아니라 흩어져 버린 무리에 불과했다. 얼굴에 길고더러운 수염이 났으며, 몸에는 누더기가 된 군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군기도 대열도 없이 힘없는 걸음걸이로 나아갔다. 모두 지치고 기운이 빠져서 어떤 생각이나 결심을 할 수 없는 상태로 그저 습관적으로 걷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피로로 쓰러질 것같았다. 특히 소집병들이 눈에 띄었다. 총의 무게 때문에 허리가 굽은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조용한 연금 생활자들이었다. 쉽게 공포에 사로잡히지만 순식간에 열광하며, 하시라도 공격하고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는 민첩한 어린 유격대원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큰 전투에서 전멸한사단의 패잔병인, 붉은 반바지를 입은 병사들도 있었다. 이 다양한 보병 - P7
도시는 차츰 평소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외출을 삼갔고, 거리에는 프로이센 병사들이 득실거렸다. 게다가 커다란 살인 도구를 거만한 태도로 보도 위로 끌고 다니는 파란 제복의 경기병장교들도 지난해에 같은 카페에서 술을 마시던 프랑스 장교들보다 일반시민에게 더 큰 경멸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에는 뭔가가 있었다. 미묘하고도 알 수 없는 그 무엇, 견디기 힘든 낯선 분위기가 어떤 냄새처럼, 침략의 냄새처럼 도시 안을 감돌았다. 그 냄새가 집들과 공공장소들을 가득 채웠고, 음식의 맛을 변하게 했으며, 아주 먼 야만적이고 위험한 부족의 나라를 여행하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 P11
다음 날은 겨울의 투명한 햇살이 흰 눈 위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마침내 말이 매어진 승합마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터운 깃털에싸인 흰 비둘기 한 떼가 검은 점이 박힌 장밋빛 눈을 반짝이며 가슴을내민 채 말 여섯 마리의 다리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김이 나는 말똥을 파헤쳐 먹이를 찾고 있었다. 마부는 양가죽으로 몸을 감싼 채 마부석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모든 여행자들이 환희에 차서 나머지 여정을 위해 음식을 싸고있었다.그들은 비곗덩어리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조금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수줍게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치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얼굴을 돌렸다. 백작은 품위 있는 태도로 아내의 팔을잡고 그 불결한 여자의 접근으로부터 그녀를 떼어 놓았다. 뚱뚱한 매춘부는 아연실색해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겨우 용기를 그러모아 공장주의 아내 곁으로 가서 "안녕하세요, 부인하고 공손하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여자는 자신의 높은 정절이 모욕받기라도한 것처럼 건성으로 고개를 움직여 무례하게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모두 바쁜 것처럼 행동하며 그녀가 치마에 무서운 전염병 균이라도 묻혀 온 것처럼 그녀를 멀리하려 했다. 그들은 서둘러 마차가 있는 쪽으로달려갔으며, 그녀는 맨 나중에 마차로 가서 처음 이곳에 올 때 앉았던자리에 조용히 다시 앉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지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척했다. 루아조 부인이 멀리서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기 남편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저 여자 옆에 있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 무거운 마차가 흔들렸고,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비곗덩어리는 감히 눈을 들지 못했다.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자신이 위선에 가득 찬 그 사람들 때문에 프로이센 장교의 품에 던져져 그의 애무로 몸을 더럽히고 굴복했다는 사실에 모욕을 느꼈다. - P55
조국에 대한 성스러운 사랑이여. 인도하라 떠받치라. 우리의 복수하는 팔을 자유, 사랑하는 자유여. 그대의 수호자들과 함께 싸우라!
마차는 더 빨리 달렸다. 쌓인 눈이 단단해진 것이다. 디에프까지 가는길고도 음울한 여행 동안 울퉁불퉁한 길이 이어졌고, 코르데는 해가져서 몹시 어두워진 마차 안에서도 악착같은 고집으로 단조로운 복수의 휘파람을 계속 불어 댔다. 사람들은 진저리가 나고 약이 올랐지만 그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그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어 가사를 한 구절 한 구절 상기하게 되었다. 비곗덩어리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이따금 노래 구절 사이에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억누를 수 없는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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